우리는 피를 나눈 사이를 혈육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궁금하다. 피, 즉 유전자의 일부를 공유했다고 해서 사람들은 정말로 서로의 ‘피’를 나눌 수 있는가. 꿈과 고통, 희망과 절망에 대하여 낱낱이 이해할 수 있는가. 진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가. 거꾸로 물을 수도 있겠다. 가족이라는 핏줄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의 ‘피’를 나눌 수 없는가. 그런가. 나의 가장 소중하고 치명적인 것을. 나의 맨 밑바닥을.
프로복서가 되고 싶어 프랭키의 체육관을 찾았을 때 매기는 서른한 살이었다. 그보다 곱절의 세월을 더 살아온 것 같은 프랭키는 냉정하게 말한다. 그 나이에 발레리나를 지망하는 여자가 없듯 너 역시 권투선수가 될 수 없다고. 그러나 매기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매기는 오직 꿈만 보는 사람이다. 꿈에 대한 열망이 거룩하도록 집요하여 어떤 고통도 기쁘게 참아 낼 수 있다. 어서 링 위에 서고 싶고 더 강한 상대와 맞붙고 싶다. 승부를 걸고 싶고 제 실력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다. 이 가난한 웨이트리스는 자기존재를 세상에 증명할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챔피언을 케이오시키고 벨트를 획득하는 순간은 과연 한 명의 프로복서로서 닿을 수 있는 권투인생 최고의 정점일 것이다. 하지만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는 제가 훈련시킨 복서들 앞에 다다를 그 순간을 자꾸만 유예시켜 왔다. 짧고 강렬한 절정 뒤에는 필연적으로 내리막이 온다. 그것이 삶이다. 정작 프랭키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선수가 마주할 생의 굴곡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기가 떠안게 될 마음의 빚과 상처일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보호하라. 프랭키가 선수들에게 입버릇처럼 외쳤던 소리는, 실은 공허한 혼잣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랭키는 매기의 챔피언 타이틀전을 보류하지 않는다. 도리어 예상보다 빨리 경기를 추진한다. 이미 그가 매기의 간절한 열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는 훌륭한 지혈사다. 부러진 코뼈를 맞춰주고, 피를 멈추게 한다. 속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친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매기가 멍한 표정으로 차안에 앉아있을 때 프랭키는 말없이 세차를 한다. 유리창에 묻은 얼룩들을 깨끗이 씻어내는 그는 매기의 고통과 꿈, 절망과 희망, 그 환하고 아픈 무늬들을 찬찬히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챔피언 전에서 매기가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그 찰나, ‘자신을 보호하지 않은 사람’은 링 위의 매기만이 아니다.
프랭키와 매기는 아버지와 딸도, 연인 사이도 아니다. 그들의 특별한 관계를 규정할만한 단어는 꼭 하나 뿐이다. 가만히 발음해본다. 혈육. 다정하고 쓸쓸하고 쓰라린 이름. 가슴 맨 밑바닥의 자리. 영혼의 피를 나눈 사람. 최후의 순간 프랭키는 길고 어둠침침한 복도를 걸어서 나갔다. 그에게 남은 것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