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이 <외출>을 가리켜 아이러니에 관한 사랑영화라고 불렀던가. 아이러니라면, 이 고요한 영화가 불러일으킨 믿을 수 없는 소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월17일 배용준과 손예진 주연의 <외출> 삼척 촬영현장에는 약 200명의 국내 취재진과 140명의 외국기자가 몰려들었다. 홍콩, 대만, 중국 등 아시아 매체와 미국, 유럽 매체가 포함된 해외 취재진 가운데에는 <요미우리신문> <키네마준보> <NHK>를 포함해 106명이 참가한 일본 언론이 단연 다수다. “일본 미디어들은 아무래도 배용준의 사진이나 기사가 시청률과 부수에 확연한 영향을 끼치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미우리신문> 도요무라 준이치 특파원의 설명. 그러나 한국영화 팬이라는 그는, <외출>이 감독의 영화가 될 거라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을 떠난 지 두 시간, 횡성휴게소에 이르자 눈덮인 가지를 늘어뜨린 침엽수들이 길가에 늘어선다. <4월의 눈>(April Snow, <외출>의 해외 개봉제목)을 취재하러온 일본 기자들이 3월의 설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침에 내린 비로, 1시 반으로 예정됐던 현장공개가 늦어집니다.” 기자와 카메라 기자재로 들어찬 삼척 팰리스호텔 9층에는 일본어와 영어의 안내방송도 연달아 울려퍼진다. 오늘의 촬영현장은 아담한 공원을 거느린 정자 죽서루. 불륜의 밀월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아내와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길고 고통스런 외출을 하고 있는 인수(배용준)와 서영(손예진)이 함께 겨울의 끝을 맞이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곳이다. 버스가 쏟아낸 기자들은 마라톤 참가자들처럼 앞을 다투더니 스스로의 숫자에 놀란 듯, 뒤돌아서 취재진의 사진을 찍어댄다. 마침내 점심식사를 마친 배우와 스탭들이 나타나자 긴장으로 끊어질 듯한 포토라인. 여위어서 턱선이 한층 예리해진 배용준이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앞에 선다. 중간색 청바지에 검은 웃옷으로 몸을 감싼 손예진과 배용준은, 세상의 그늘에 섞여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인수와 서영의 모습 그대로라, 그들 앞에 몰려든 카메라들이 어색해 보인다.
의료원과 모텔, 카페 등 죽서루 앞에서 빙글 돌면 주요 촬영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삼척의 아담한 겨울 풍경에도 <외출>로 인한 미세한 술렁임들이 보인다. 광고판에는 “배용준의 행복한 외출 배사마 닷컴‘이라는 팬클럽의 응원구호가 나붙었고, 발빠르게 옥호를 개명한 듯 ‘외출’이라는 카페의 간판이 보인다. 현장 공개가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배용준은 “이번에는 이미지가 아니라 연기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감독을 신뢰하기에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논리를 세우고 감정을 만드는 나의 연기방식과 허진호 감독의 방식은 전혀 달라서 힘들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두 방식이 수렴할 것 같고 그것이 장래의 내 연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손예진은 감독의 즉흥적 스타일을 즐기고 있는 듯 “오히려 현장에 가기 전에 너무 많이 준비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촬영에 임하는 자세를 전했다. <외출>은 오는 9월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에서 한국과 동시개봉을 확정했고 타이,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의 개봉날짜는 택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