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이것은 대단한 영웅담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체 게바라의 말일 뿐이다. 월터 살레스가 아무리 체에 대한 신화 혹은 반대로 탈신화 작업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위대한 혁명가를 떠올리지 않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1951년 1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남아메리카를 여행했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가 되기 전의 23살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세상을 발견하고 내면의 변화를 겪은 8개월간의 기록이다. 하지만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시인을 꿈꾸던 의학도가 어떻게 해서 혁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으며, 남아메리카의 현실과 빈곤을 보여주지도, 민중과의 동행길을 마련하지도 않는다. 50년 전의 생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일기가 영상과 음악으로 더 기억될 그림엽서처럼 되다니 끔찍하다, 허망한 경험이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살레스의 전작 <중앙역> <비하인드 더 선>의 감동을 잇기는커녕 살해당한 체 게바라를 찍은 사진 한장의 흡인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DVD 속 인터뷰에서 살레스는 “이제 라틴아메리카 감독이 된 것 같다”고 말하지만,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엔 제작자로 참여한 로버트 레드퍼드의 색이 더 강하다. 수려한 영상을 자랑하는 근작임에도 DVD의 화질은 좋지 않다. 인터뷰와 홍보영상, 3개의 삭제장면 등이 부록으로 제공되는데 노인이 된 알베르토 그라나도의 모습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