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밤비>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디즈니 클래식
2005-03-28
글 : 손별이

1942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참전국 미국의 모든 영화산업은 군대에 종속되었고,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도 군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올려 붙이고 있었다. 단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영국에서 극장 개봉한 장편 ‘밤비’였다.

밤비는 애니메이션 속에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고 싶어했던 월트 디즈니가 필릭스 솔튼의 베스트셀러 ‘밤비: 숲속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디즈니 클래식 5번째 작품이다. 아직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의 초창기였던 그때, 월트 디즈니는 <환타지아> 못지 않은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주인공이 되고, 관객들이 실제로 자연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같이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는 없을까.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작품이 밤비였다. 그러나 이미 영화 판권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제작자 시드니 프랭클린에게 팔린 상태.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점을 알고 있었던 프랭클린은 살아있는 사슴으로 밤비를 찍을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고 디즈니에게 판권을 양도했다.

밤비는 어린 사슴의 탄생부터 숲속의 군주로 성장하기까지를 그리고 있는데, 원작의 많은 대사를 1시간이 조금 넘는 애니메이션 속에 담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글로 읽으면 감동적이지만 영상으로 표현하면 지루해지는 에피소드들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 스토리 회의를 통해 원작에 없던 밤비의 죽마고우 토끼 텀퍼와 스컹크 플라워가 추가되었고, 대사는 각 동물들의 테마음악과 몸짓으로 대치되어, 1천 단어 정도만 사용되었다. 쉽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쾌한 음악은 음악 천재라고 불리던 작곡가 프랭크 처칠의 작품. 솔리스트와 소리 코러스가 우리말로 번안해서 부른 곡들 역시 원곡 못지 않게 흥겹다. 그렇다고 밤비가 귀엽고 즐거운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올해 영국방송 채널4에서 조사한 ‘영국인이 꼽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 10위’에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유일하게 6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어했던 만큼 아름다운 수채화 풍의 화면과 교향악을 연상케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잘 어울린다.

기존의 미키 마우스나 도널드 덕처럼 동글동글한 디즈니 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캐릭터 디자인도 눈여겨보자. 애니메이터들이 동물 해부학과 실사 스케치를 배워서 사람의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동물로 새롭게 창조하였다. 피터 베인이나 도니 다나건 등 실제 어린이들이 성우로 참여하여 현실감을 높인 목소리 연기도 인상적이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밤비를 5번째 플래티넘 DVD로 만나는 기분은 새롭다. 기존의 플래티넘보다 부록이 많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또렷해진 화질의 본편과 꼼꼼하게 구성된 자료로 소장가치가 높다.

밤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메뉴는 첫 번째 디스크에 들어있는 ‘밤비:월트 디즈니의 스토리 미팅’이다. 월트디즈니 기록보관소에 남아있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본편과 동일한 시간으로 편집되었다. 밤비와 플루토의 동작 비교 화면,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속 사슴의 모습과 밤비의 대조, 실제 사슴의 형태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화해가는 스케치 등 방대한 자료를 화면분할기법과 오버랩으로 본편과 비교하여 보여준다. 폭풍우 장면에서 그레고리 성가풍의 노래를 넣거나, 숲속의 신비감을 표현하기 위해 멀티플레인 기법을 도입하고, 밤비의 결투장면을 위해 MGM영화사에서 관련 영화를 10개나 빌린 사연 등이 소개된다. 회의에 참석한 월트 디즈니, 스토리감독 퍼스 피어스, 미술 컨설턴트 시드니 프랭클린, 동물해부학 교수 리코 리브런, 수석 애니메이터 프랭크 토마스, 감독 데이비드 핸드 등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에 반영되었는지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

미술 컨설턴트 시드니 프랭클린
타이러스 웡이 그린 수채화풍 배경

두 번째 디스크에서 가장 먼저 선택해볼 메뉴는 60년이 지난 애니메이션을 복원해내는 과정을 설명하는 ‘밤비의 복구’. 오래된 필름은 시간이 지나면 펄프 종이로 만든 책처럼 부스러져 가루가 되어버린다. 필름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낡은 원본을 필름 세척과 디지털 보정으로 되살려내고, 배경 원화를 참고해 색상 보정까지 해서 재창조해내는 흥미진진한 과정을 설명과 함께 볼 수 있다. 잡티 많던 필름에서 화사하고 깔끔하게 전환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숨겨진 비화가 궁금하다면 ‘디즈니 기록 속으로’를 선택하자. 디즈니에서 25년간 애니메이터로 일했고 속편 제작에 참여한 안드레아스 데자가 디즈니 자료보관소를 방문해서 밤비 관련 자료들을 보여준다. 꽃향기를 맡던 밤비가 실수로 꿀벌을 삼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토끼 텀퍼의 이름이 보보였다면 어땠을까?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코믹한 아이디어 스케치, 연필선으로만 남아있는 미공개 스토리보드, 중국계 배경 아티스트인 타이러스 웡의 아름다운 미니어처 장면설정 등을 볼 수 있다.

기존 영상과 복구된 영상 비교
디즈니 애니메이터 안드레아스 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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