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피디·작가들 형식·내용 파괴 실험
지난 25일 오후, 문화방송 드라마국 한 사무실엔 박성수·김진만·고동선·신현창·이윤정 피디가 점심 식사도 잊은 채 뭔가에 몰두해 있었다. 이들과 당분간 ‘결사체’로 엮일 오경훈 피디만 없었다.
주목받는 중견과 신인 드라마 피디들이 10평 남짓 작은 사무실에 모였던 까닭은 뭘까? 6명의 피디가 공동작업이라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작가는? 또 배우는? 문화방송 드라마의 새로운 실험이 벌어지는 현장의 분위기는 낯설고 동시에 신선했다.
이들은 4월2일 새 얼굴을 내미는 문화방송 주말 연작드라마 <떨리는 가슴>의 연출을 맡은 피디들이다. 박 피디는 <네 멋대로 해라>로, 김 피디는 <아일랜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오 피디는 <불새> 하면 다들 알 터다. 이 피디는 문화방송 최초 드라마 여성 피디이고, 고·신 피디는 <베스트극장>에서 좋은 단편들을 여럿 남겼다. 이 가운데 최고참인 박성수 피디가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날 보이지 않던 오 피디는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
작가도 쟁쟁하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김인영, <아일랜드>의 인정옥, <다모>의 정형수, <사춘기>의 박정화, <반올림>의 홍진아. 더 설명이 필요없다.
배우는 배종옥과 김창환이 부부 사이로, 배두나는 배종옥의 동생으로 나와 6주 12회 동안 그대로 간다. 하리수가 2편에서 트랜스젠더로 나오고, ‘신화’의 김동완이 1편에서 사랑에 빠져 괴로워하는 회사원 역을 맡았다.
박 피디가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를 맡는 순간 “가슴이 너무나 떨려” 제목이 결정됐다. 보름 남짓 만에 작가, 피디, 배우들이 생맥줏집, 포장마차, 와인바, 사무실 등 여기저기서 “수다를 떨다” ‘사랑’ ‘기쁨’ ‘슬픔’ ‘희망’ ‘외출’ ‘행복’이라는, 삶의 가장 떨리는 순간을 대표하는 열쇳말로 각 편의 제목을 삼기로 했다. 이혼을 경험한 배두나가 연인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과정에서 겪는 ‘사랑’,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가족에게 인정받는 ‘기쁨’, 김창환의 초등학생 딸이 겪는 첫사랑의 가슴 아린 ‘슬픔’, 김창환이 대학 시절 꿈을 되돌리는 ‘희망’, 배종옥이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는 ‘외출’, 수십년 만에 나타난 엄마를 만난 배종옥의 ‘행복’이 전체 드라마의 줄거리다.
<한강수타령> 후속작의 준비가 덜 돼, 긴급 기획된 드라마라 약점도 없지 않을 테지만, 문화방송 드라마의 ‘전화위복’의 큰 흐름을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천편일률적이던 드라마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도 갈아채웠다는 점은 기대를 갖게 한다.
박 피디는 “드라마 제작 과정과 형식이 스타 중심에서 벗어나 연출과 작가 중심으로 돌아갈 좋은 기회”라며 “주간 단막극 부활의 신호탄이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