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에 찍은 첫 영화로 열네살에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아버린 소년은 약간 지루해 보였다. 3월22일 신라호텔에서 기자들을 마주한 야기라 유야(15)의 손가락은 목덜미와 앞머리를 끊임없이 방황했다. 머리칼 속에서 답을 적은 쪽지라도 찾아낼 기세였다. 누군가 ‘신데렐라 보이’라는 별명을 거명하자 엄청난 비방이라도 들은 표정으로 “신데렐라 보이? 신데렐라 보이라… 신데렐라…” 하며 되새김질한다. “한국에 오면 불고기랑 김치를 먹고 싶었다”는 대답만큼은 확신에 찼는지 또랑또랑하다. 알고 보니 전날 저녁식사로 불고기를 택한 야기라는 절묘한 타이밍에 불판을 갈아치우는 종업원의 묘기에 “이것이야말로 맛의 비결!”이라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아무도 모른다>가 그에게 안긴 호사스런 상은 축구선수가 될까, 영화배우가 될까 망설이던 이 소년의 로맨틱한 고민에 종지부를 찍었다. 중간고사 탓에 시상식에 앞서 도쿄로 돌아왔던 야기라는 뒤늦게 트로피를 받아들고 반문했다고 전해진다. “이거 집에 가져가도 되는 건가요?” 그러나 결국 중간고사는 망치고 상패도 소속 기획사무실의 진열품이 됐다고 하니, 칸영화제가 이 소년에게 남긴 실질적 선물은 차기작 캐스팅뿐인 듯하다. 야기라의 신작은 신인 가와케 슌사쿠 감독의 <별이 된 소년>. 코끼리 조련사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로, 타이에서 훈련을 받고 2달간 촬영을 마쳤다. “<아무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없었는데 <별이 된 소년>은 시나리오가 있어서 걱정했다.” 언뜻 잘못 들었나 싶지만, 단 한편의 영화를 찍은 어린 배우에게는 첫 영화가 세상 모든 영화를 재는 잣대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이들의 대사를 현장에서 속삭여주었다.
가까이에서 만난 야기라 유야는 마치 누군가의 조그만 그림자 같았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저 두개의 까만 웅덩이 같은 눈동자에서, 방심한 순간에도 앙 다물린 입에서, 걸어다니는 비밀과도 같은 소년 아키라를 보았을 것이다. 도쿄 한복판의 동굴 같은 아파트에서 버려진 동생들을 보듬고 변명도 구명도 하지 않은 채 살아남은 아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아키라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쩌겠느냐는 어른의 냉정한 질문에 야기라는 아키라의 고난을 돌이키며 잠깐 망설인다. 그리고 “결국은 아키라처럼 할 거다”라고 답한다. 착해 보이려는 아이의 허풍만은 아니다. 야기라의 영웅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다.
<아무도 모른다>의 달리는 신에서 트래킹하는 카메라의 속도에 뒤처져 잠깐 프레임에서 벗어날 만큼 작았던 야기라는 이제 167cm가 됐다. 누이동생과 투덕거리고 ‘린킨파크’의 음악에 열광하며 올 봄 고교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당면한 인생 최대의 난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영화를 찍는 동안 극중 아키라처럼 때묻고 굶주린 기분이었다는 소년에게 영화가 그런 고생을 할 만한 일일까 물었다. 15살의 신인배우는 아직 회의를 몰랐다. “그럴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영원히 남는 거니까. 영원히 남을 테니 어중간하게 하면 안 된다.” 야기라의 오후 첫 스케줄은 그렇게 끝났다. 어른들 시선의 감옥에서 벗어나자마자, 도착한 날 공항에서 남의 차 뚜껑을 대뜸 열며 이것이 한국 차냐고 물었다는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가 돌아온다. 쉬는 시간을 맞아 기지개를 펴는 학생처럼, 인터뷰 룸의 의자를 복도로 끌고 나와 레슬링을 벌인다. 소년은 조금씩 기분이 좋아진다. 기자에게 싱긋 웃어주는 선심까지 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일은 끝났고 개학은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