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드라마 경쟁에서 연속 고배를 마신 MBC가 4월 내놓은 <떨리는 가슴>은 새로운 도전 혹은 또 하나의 사고다. <떨리는 가슴>은 배종옥, 배두나, 김창완이라는 공통의 카드를 가진 6명의 PD와 작가가 전하는 6개의 다른 이야기를 연작 형식으로 묶은 독특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선을 긋고, 그 안에 정확히 들어맞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로 튈지 몰라야 더 재미있고, 매혹적이지 않나. 그래서 <떨리는 가슴>을 어떤 것으로도 묶지 않았다. 묶이게 되면 재미없어진다.” 전체 기획을 담당한 <네 멋대로 해라>의 박성수 PD의 말이다.
박 PD의 말대로 <떨리는 가슴>은 삼각 사랑에서부터 트랜스젠더, 사춘기의 여린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를 코믹, 로맨틱 멜로, 정통멜로, 판타지, 성장드라마 등의 장르로 표현해내 어떤 드라마라고 단정할 수 없는 묘한 구석을 지녔다. 이는 불치병과 재벌 2세가 판치는 드라마 시장에서 분명 반길 일이다. 하지만 어떤 시간보다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주말시간에, 그것도 그 이름도 쟁쟁한 김수현의 <부모님전상서>에 맞서 내놓은 카드 치고는 좀 ‘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일랜드>의 김진만 PD, <불새>의 오경훈 PD를 비롯해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경희 작가, <네 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의 인정옥 작가, <다모>의 정형수 작가 등 스타 PD와 작가가 모여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긴 하지만 이들도, 또 드라마도 ‘급조’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떨리는 가슴>은 아직(그러니까 방송 1주일 전인데) 2주차 이후의 시놉시스와 대본도 나와 있지 않으며(혹은 정해진 것도 바뀔지 모를 상황이다), 시청자들과 대중적인 교감을 나누기 위한 전략도 짜여 있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박성수 PD는 “신난다”고 말한다. “내용뿐 아니라 제작일정도 드라마틱하다. (웃음) 바쁜 일정에 익숙한 사람들이니까 시간이 없다는 점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점이 시청자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 같다. PD나 작가들이 평소 드라마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같은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그의 말대로 유명 PD와 작가들의 진짜 모습을 본다는 것은 <떨리는 가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다. 작가와 PD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기에 저런 캐릭터를 또 저런 이야기와 결말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던 이들에게 <떨리는 가슴>은 분명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니 말이다.
아직 세부적인 줄거리가 확정되지 않은 점도 <떨리는 가슴>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PD와 작가의 번뜩이는 재기가 발휘될 가능성이 어느 작품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박 PD는 “작가와 PD들이 캐릭터의 성격 같은 건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자기가 맡은 부분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그 회를 담당한 이들의 몫이다. 아마도 앞주의 이야기가 다음 회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국내 최초의 리얼리티 쇼 같은 살아 있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라는 조심스런 예측도 내놓았다.
그렇다면 회를 거듭할수록 입체적이 될 <떨리는 가슴>의 ‘열린’ 구조는 클라이맥스에서 끝내놓고, 다음편 예고를 생략하는 타 드라마와 같은 수고로움 혹은 전략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제작진은 “전체적인 연결성과 다음회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자아내야 하는 데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점점 탄탄해질 스토리가 있다면,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급조된 ‘덕분에’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도 <떨리는 가슴>에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제작진이 그동안 생각만 해오던 신선한 아이템들을 이번 기회에 시도해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여 한 가족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여섯 가지 순간들(사랑, 기쁨, 슬픔, 희망, 외출, 행복)에 대한 관찰이라는 <떨리는 가슴> 안에 담긴 이야기는 다소 파격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다모>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정형수 작가가 집필하는 ‘기쁨’ 편.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를 통해 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창 집필 작업에 정신이 없다는 정 작가는 “좀 쿨하게 접근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라며 운을 떼더니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도 사랑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가장 1차적인 혈육인 가족이 입을 상처와 파장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여 ‘기쁨’에서는 2년 만에 여자가 돼 돌아온 남동생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이해해가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잔잔히 전개될 예정이다.
이경희 작가가 집필하고 김상진 PD가 연출을 맡은 ‘외출’도 기대되기는 마찬가지. 애인이 생긴 아내를 뒤쫓다 20년 전의 자신과 조우하게 되는 남편 김창완의 이야기로,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역시 <네 멋대로 해라>의 명콤비 박성수 PD와 인정옥 작가가 만난 마지막 회 ‘행복’ 편이다. 박 PD는 당초 배종옥과 엄마가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었지만 간밤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했다. “앞의 5편에 대한 어떤 반전 같은 걸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PD와 작가, 배우들이 6주 이야기는 몰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물론 이것도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요”라며.
MBC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내놓은 파격적인 시도는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좋은 평가를 얻은 경우가 많다. <내 인생의 콩깍지>나 <다모>는 드라마 장르의 다양성을 가져왔고, <네 멋대로 해라>는 본격적인 드라마 마니아를 양산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비록 ‘급조’돼 질을 답보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러운 <떨리는 가슴>의 선전도 기대된다. 가족들이 한데 모여 지지고 볶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역시 사랑하는 가족이야’를 깨닫길 강요하는 주말드라마에 지친 이들이 비록 10% 내외라도, MBC의 이런 시도는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세부 줄거리 소개
예측 불허의 결말, 6부는 아직도 오리무중
불행히도 <떨리는 가슴>의 줄거리는 무엇도 확실치 않다. 그러니 부디 지금 여기 적힌 것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시길. 뒤로 갈수록 변화의 가능성은 점점 커짐도 잊지 마시길. 호기심 많은 시청자들에겐 좀 가혹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대신 10분만 보면 전체 줄거리가 예상되는 뻔한 내용은 없을 것이다.
1부 사랑 4월2∼3일 | 극본 김인영 | 연출 오경훈
2년제 대학 관광통역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거기서 만난 미술학도와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했으나 3개월 만에 이혼당한 배두나(배두나). 어렵게 다시 시작한 새로운 사랑, 성재(김동완)가 갑자기 청혼을 해와 당황스럽다. 그에게 잠깐 이혼한 과거를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기에 매력적인 이혼남 정남수(신성우)까지 끼어들어 두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2부 기쁨 4월9∼10일 | 극본 정형수 | 연출 고동선
2년 동안 행방을 감춘 만호(하리수)가 나타났다. “트랜스젠더 김혜은입니다”라며. 트랜스젠더가 남의 일인 줄 알았던 가족들은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 않았나. 가족들은 더디지만 따뜻하게 혜은을 인정하기 시작한다.3부 슬픔 4월16∼17일 | 극본 박정화 | 연출 신현창
초등학교 6학년인 보미(고아성)는 당돌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엉뚱한 소녀다. 인생이 뭔지 알 것 같은 그에게 첫사랑 찬이가 찾아온다. 보미는 찬이로부터 첫 데이트, 첫 키스, 첫 포옹의 ‘떨림’을 배운다.4부 희망 4월23∼24일 | 극본 홍진아 | 연출 이윤정
사는 게 심심한 김창완(김창완)은 가족들에게 장난을 친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언제나 썰렁. 장난을 치고 돌아서는 마음이 더욱 헛헛하던 찰나 한 여자가 찾아온다. 듣도 보도 못한 노래를 작곡해줘서 고맙다며. 창완은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가슴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한다.5부 외출 4월30일∼5월1일 | 극본 이경희 | 연출 김진만
아내 배종옥(배종옥)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창완은 당황한다. 애써 쿨한 척하려고 하지만 결국 아내를 뒤쫓는다. 아니 그런데. 아내가 웬 어린 남자애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가 어쩐지 낯익다.6부 행복 5월7∼8일 | 극본 인정옥 | 연출 박성수
배종옥은 엄마와는 상관없이 살아왔다. 모두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고아라고 여길 만큼. 한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 앞에 돌연 나타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