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너무 추워서 <남극일기> 찍는 줄 알았다”, <뇌파> 촬영현장
2005-04-04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신태라 감독의 독립 SF스릴러 <뇌파> 촬영현장

찬바람이 쌩쌩 부는 성북구 제기동 안암천의 이면도로. 신태라(본명 황태건) 감독의 독립 디지털장편 <뇌파>의 촬영현장. “이 정도면 따뜻한 편이다. 한창 촬영할 때는 완전 <남극일기>였다”며 손을 내젓는 김희태 PD. 촬영장 인원은 배우와 기자까지 다 포함해도 스무명이 안 될 만큼 단출하다. 교각 난간에 나란히 걸터앉아 상의 중인 신 감독과 최찬민 촬영감독. 감독의 손에 들린 DV캠코더는 감독 모니터 겸 메이킹용. 조명 반사판이 필요하면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집어주는 십시일반의 스탭들과 기계도 똑 닮았다. 붐과 조명기가 매컷 바뀌는 주인의 손길을 따르고 오순도순 현장은 돌아가고 카메라도 돌아간다. <뇌파>는 제목처럼 뇌파에 의해 삶의 변화를 겪는 준오가 염력을 비롯한 초능력을 경험하고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음모론에 기반한 SF가 가미된 스릴러.

어디선가 촬영장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난다, 불청객. 어느 동네에서나 만나는 한국 현대사와 정치론을 읊으며 동시녹음을 방해하는 동네 아저씨 등장. 아저씨를 겨우 돌려보내니 이번에는 아이들. “뭐 찍어요? 으아아.” 자동차, 리어카, 시베리안 허스키와 함께 달리는 여인, 술취한 양복 아저씨, 자전거, 교복 3인조가 지나가고 드디어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처럼 “고, 고, 고”를 외치는 신 감독. 주인공 제니가 머리에 이상이 온 준오의 얼굴을 쓰다듬고 돌아서는 장면. 배우들도 날씨라면 할말이 많다. 여주인공 장유하는 “홍익대 옥상에서 촬영하던 날, 바람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라며 오늘 날씨의 온화함을 역설했고, 남자주인공 김도윤은 “얼어붙은 땅에서 맞고 뛰고 달리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대세인 <남극일기>론에 동의했다.

도로가 너무 좁아 돌리를 위한 트랙을 두개 깔고 나니 차가 지나갈 수 없다. 촬영 강행! 이면도로 양쪽 끝을 김 PD와 군대에서 제대한 지 한달 만에 제작부로 끌려와 “혹한기 훈련 다시 하는 기분”이라는 제작부 노호선씨가 각각 맡았다. 몇 테이크 뒤 장면이 마무리될 무렵 호선씨의 방어선이 뚫리면서 흰색 쏘나타가 돌진해온다. 한참 촬영에 열중하던 터라 트랙을 치우지도 못하고 사람들은 몰려 있고 일촉즉발의 순간. 거의 트랙을 스치듯이 지나치는 자동차. 트랙은 급하게 걷히고, 스탭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0초나 지났을까. 곧바로 사이렌을 울리며 흰차를 쫓는 경찰차 등장. “잡혔을까?” 잠시의 논란을 뒤로한 채 다음 촬영지로 이동.

경동시장 버스정류장 근처 모 식당이 촬영의 베이스캠프. 식당 안에서는 노숙자를 연기할 신 감독이 분장 중. 미술부는 종이박스로 신 감독의 숙소를 골목에 만든다. 버려진 가구에 역광이 생기지 않도록 청테이프를 붙이느라 촬영·조명 파트는 정신없다. 드디어 슛. 박스 안에 들어간 신 감독은 잠들었는지 무소식이다. 준오가 골목을 지나치다 노숙자를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 신 감독이 손을 내밀며 벼락처럼 대사를 치자 남자주인공은 소스라치고 카메라 뒤의 스탭들은 웃겨서 까무라친다. 한켠에는 방금 도착한 다른 배우들에게 “너 감식반 할래? 경찰 할래?”라며 민주적인 캐스팅이 한창. 오늘 촬영현장의 백미. 식당 아주머니가 약속된 30분을 못 참으시고 전기를 끊었다. 암흑으로 변한 골목. 사정 끝에 30분을 더 약속받는 제작실장. 신 감독의 명연기로 순탄하게 마무리되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준비하며 늘 그렇듯이 밤이 저물어간다. <뇌파>는 3월에 촬영을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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