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를 기억하는 건 길게 객차를 매달고 한밤중을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된 기억들이 모두 그러하듯, 오래된 영화의 기억도 작게 분절되어 있다. 시퀀스들은 사라지고 스틸사진들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흘러간다. 캄캄한 밤을 달리는 긴 객차마다 차창에 한 여배우의 얼굴이 떠 있다. 나스타샤 킨스키. 내가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여배우라고 조금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 그녀가 내게 손짓한다. 멀리서 바라보지만 말고 이 기차에 올라타세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탄다.
대학 1학년 시절. 1979년. 동숭동 낙산자락 달동네의 작고 허술한 방. 앉은뱅이 책상, 철제 책꽂이, 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신 전축. 둘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언제나 펼쳐진 채로 놓여진 책이 있다. <테스>. 300원짜리 삼중당 문고 한 권을 사면서도 새가슴이 되어야 했던 시절, 그 크라운 판형에 올 컬러 책을 사기 위해 내가 써야 했던 돈은 얼마였을까. 영화사들이 무슨 유행처럼 출판사를 차리던 시절이었다. 영화 <테스>를 수입한 회사에선 영화의 중요한 장면들을 거의 고스란히 담아 소설 테스를 펴냈다. 그리고 그 덕에 내게 ‘테스’는 토머스 하디의 『테스』가 아니라 나스타샤 킨스키의 <테스>가 되었다. 심지어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도 아니고, 나스타샤 킨스키의 <테스>다.
문학 청년·군인·넥타이맨에게 기억속 차창안 그는 말을 했다
겁에 질린 커다란 눈, 하얀 이가 보일 듯 말 듯 살짝 열린 입술, 그 입술 앞에 내밀어진 붉은 딸기. 바람둥이 알렉스가 순진한 시골처녀 테스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사진은 달동네의 좁아터진 내 방을 여신의 신전으로 바꿔놓았다. 나는 여신을 모시는 젊은 사제였다. 날마다 여신에게 싱싱한 딸기를 바치는, 아니, 스스로 그 딸기가 되어 여신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에 몸을 떠는, 미친 사제였다. 오! 그 책을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그 누군가에게 저주 있으라. 그는 내 젊은 날의 가장 은밀한, 그러나 순결했던, 첫사랑의 욕망을 도둑질해 갔으니.
기억은 대구 중심가에 있던 어느 극장에 멈춘다. 푸른 제복에 갇혀 있던 스포츠 머리 군인 ‘아저씨’가 혼자 극장에 앉아 있다. 생리적 이유 때문에 공포영화를 거부하던 그 군인 아저씨가 외출을 나와 혼자서 유혈 낭자한 그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으로 들어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의 여신 나스타샤 킨스키가 나왔기 때문에. <캣 피플>. 1982년, 전두환 장군의 전성시절, 시대는 공포영화보다 더 참혹했고, 시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던 문학청년에게 그 단순명쾌한 명령어의 세계 군대는 지옥이었다. 흑표범이 된 여신이 군인 아저씨에게 명령한다. 공포를 이겨내거라. 눈을 뜨고 나를 보라. 아름다움은 공포 속에서 가장 빛나는 법이다!
기억은 다시 기차에 올라타 몇 년쯤의 시간을 달려간다. 지금은 사라진 인사동 입구의 어느 작은 소극장. 객석은 텅 비어 있다. 넥타이를 맨 젊은 샐러리맨이 의자에 파묻혀 있다. 그는 울고 있다. 영화가 서러워서, 시인이 되지 못하고 월급쟁이가 되어 버린 자신의 길지 않은 인생이 서러워서. <파리, 텍사스>. 여신은 유리벽에 갇혀 있다. 하나씩 옷을 벗으며 여신이 말한다. 울지 말아요, 내 사랑. 당신이 찾아온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 텍사스 황무지의 파리였어요. 외롭고 쓸쓸하고 서러운 황무지, 그게 인생이랍니다.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요. 눈물을 닦고 또 걸어가세요.
기억이 올라탄 기차는 작은 간이역들마다 멈춰선다. <달빛 그림자>, <마리아스 러버>, <사랑의 아픔>, <막달레나>, <라 비온다>… 그리고 종착역이다. <원나잇 스탠드>. 기억의 기차는 나를 내려놓고 떠나간다. 떠나가는 기차의 창에서 이제 나이든 여신이 손을 흔든다. 여신처럼 나이든 나는 그녀에게 고개 숙여 절한다. 감사합니다, 나의 여신이여. 당신이 있어 내 삶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