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달콤한 인생> [2] - 김지운 감독 인터뷰
2005-04-0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

“내가 예술가처럼 찍고, 장사꾼처럼 편집한 걸까?”

-제목을 <달콤한 인생>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는지.

=최종 제목으로 떠오른 후보들이 모두 기존에 있던 영화제목들이었다. <의리없는 전쟁> <트루 로맨스> <돌이킬 수 없는> 이런 식으로. 사실 다 제목으로 써도 어울릴 만한 것들이긴 하다. 그중 하나가 <달콤한 인생>이었다. 나는 공교롭게도 펠리니의 이 영화를 아직 못 봤다. 하지만 영화적 분위기와 뉘앙스가 가장 잘 살아날 수 있는 제목은 이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달콤한 자기 내부의 욕망에 의해서 달콤한 꿈을 꾸고, 달콤한 상상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시사회장에서 “액션이 가미된 누아르풍의 피범벅 러브스토리”라고 했는데 그게 맞는 것 같다. 누아르 장르를 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액션의 볼거리를 보여줄 수 있는 누아르, 거기다 하드고어적인 강렬한 인상과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한편으론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순애보적인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사람은 살면서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윤리적 선택이냐, 미학적 선택이냐 할 경우 냉큼 인상적인 선택을 할 수 없으니까, 어떤 명분을 끌어들여서 선택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런 합리성의 담론을 갖고 들어와서 선택했을 때, 그 명분이 거짓 명분이었다는 것, 동기나 의도가 사실 다른 것에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콤한 인생>은 자기 감정에 서투른 한 남자가 모호한 감정의 흔들림 때문에 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마치 그것은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파멸로 치닫는 것인데, 결국 그것을 마지막 순간에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상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선우가 희수의 목덜미를 처음 보는 시선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는지.

=무언가 이 사람을 위로해주고 달래줬던 인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욕망이 건드려졌던 것이고, 중차대한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그 순간에 그것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이미지의 잔상들이 큰 동기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누아르란 어떤 것인가.

=하나는 주제면이고, 또 하나는 형식에 대한 매료다. 30∼40년대 미국 누아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누아르라고 생각하면서 본 영화는 알랭 들롱이 나오는 프렌치 누아르, 또 최근에 나오는 <저수지의 개들> <LA 컨피덴셜> <콜래트럴> 같은 수정주의 누아르다. 이런 게 내가 보고, 또 영향을 받은 누아르다. 그중에서도 어두운 면에 사로잡힌 영혼에 대한 인물들. 이런 것들이 가장 나를 사로잡는 테마인 것 같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운명처럼 리얼리티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지성과 순수를 발견한다. 그들은 고통을 받거나, 패배를 안거나 하면서 순수한 형태를 유지한다. 그런 인물이 좋고, 내 영화에 많이 나오는 인물들이 또 대부분 그렇다. 네개의 장편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누아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영화적인 인용들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 그것도 중요한 선택 동기다.

-에릭의 출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사실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선우 자신이 처리하지 못하고 벌이고 다닌 것들이 끝까지 쫓아온다는 그런 의미다. 에릭이라는 스타에 집중해서 편견이 드는 거다. 만약 에릭이 맡은 태구 역할이 무명이었다면 내가 의도했던 엉뚱함이 더했을 거다.

-액션 연출에 어떤 포인트를 두고 찍었는지 궁금하다.

=총쏘는 영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누아르 형태를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 총으로 가기 전의 과정으로 불각목 액션도 필요했던 거다. 철저하게 그 공간은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갈 것 같은, 열린 듯 닫힌 듯한 공간이다. 거기에서는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액션이 필요했다. 각목이나 주먹질보다 더 강렬한. 그래서 불각목 아이디어가 나왔다. 불과 비 속에서 좀비처럼 달려드는 수하들, 이런 것들이 카오스적인 느낌을 줬다. 능욕을 당했던 공간을 부수고 나온다는 의미로 카 스턴트까지 한 것이다.

-주인공 선우가 스탠드를 깜박이는 순간에 동남아 조폭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리듬이 굉장히 좋다. 그것이 선우와 희수가 동시에 하는 행동이기도 하고, 갑자기 누군가 나타난다는 충격도 있다. 복합적이다.

=그건 집에서 내가 하는 버릇인데. (웃음) 이 사람들을 무엇으로 소통시킬 수 있을까, 무엇으로 전이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무언가의 감정으로 빠져들어갈 때 하는 습관 같은 것으로 하면 어떨까 했다. 서로 확인되지 않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잡아주면 어떨까 해서 나온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집안에 들어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앞에서는 인물들의 정서상태를 처리하는 기능이었다면 뒤에서는 그 정서를 반복한다고 생각할 때쯤, 뭔가 새롭게 긴장을 주면서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할 때 갑자기 오는 충격이다. 비주얼의 센 느낌들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것도 너무나 황당하게 외국인들이다. (웃음) 이런 것들이 재미있는 설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장편만 놓고 보면 <조용한 가족>의 산장, <반칙왕>의 링, <장화, 홍련>의 집, <달콤한 인생>의 스카이 라운지처럼 일정한 메인 공간이 설정된다. 영화적인 상상을 할 때 장르와 상관없이 메인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항상 바탕이 되는지 설명이 가능할지.

=인물을 묘사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것이 공간인 것 같다. 공간이 설정되면, 이 사람이 거기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감정과 상황들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나한테는 공간이 중요하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쓰임새일 뿐 아니라 공간이 주제가 되는 지점까지도 가는 것 같다. 나에게는 장치이면서 주제가 되는 유용한 방법이다.

-문석 패거리들과 싸울 때 김선우의 등 뒤에서 잡았던 촬영기법은 독특하다.

=설명 불가능한 이미지들을 순간적으로 보여주면서 강렬함을 구현하기 위해,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걸 해보자 고민했다. 보디캠을 쓰면 이미지가 굉장히 독특하다. 그걸 갖고 액션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단지 액션이 아니라 와이어를 타고 공중으로 비상하면서 낙하하는 비주얼을 만들어내면 어떨까, 이런 건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보디캠을 이병헌 뒤에 매달고, 그 상태에서 와이어를 몸에 다시 매고, 그러면서 배우가 와이어를 타고 액션을 벌이는 거다.

-그 숏은 세상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인물의 심리적인 느낌으로 들어가는 거다. 불각목으로 내리칠 때도 그렇고. 세컷 정도 썼다.

-<장화, 홍련>을 보고 나서 관객이 엔딩 부분에서 궁금증을 많이 가졌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두 영화는 영화적으로 어떤 비슷한 사유 체계를 거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저러한 엉뚱한 사건들이 많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에서는 서사로 풀리고 있었다면,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은 숏의 연결, 편집상의 문제로 집약돼서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숏의 개입들, 엔딩의 편집을 함축적으로 하는 것이 의미를 너무 넘치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말을 좀 막 하자면, <장화, 홍련> 경우는 벽지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든 거다. 마찬가지로 <달콤한 인생>도 대사없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자기도 모르게 뭔가에 흔들리고, 또 그 의미를 알아가는 표정들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장화, 홍련> 때 회상신을 길게 붙인 걸 두고 많은 사람들이 앞에 설명하지 못한 걸 뒤늦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뭐냐고 했는데, 나는 그걸 설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에 오히려 놀랐다. 나는 그 숏들의 이어지는 정서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수연이가 낮잠에서 깨어보니 엄마가 죽어 있고 그걸 보는 표정들, 방 안의 공기, 색감, 그 과정들을 통해 하나의 어떤 정서를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설명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뒤의 숏들이 과잉으로 느껴졌다는 건… 되게 쿨하게 끝내고 싶었었는데… 뭔가 말이 많았나?

하지만, 그것들이 각각 하나의 주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정서적 배열이라고 생각하지, 그것이 이미지의 과잉이나 설명의 강요는 아니다. 하나라도 빠질 수 없는 것들이다. 연계 때문에 그 숏들을 바짝 붙여놔서 과용처럼 느껴질 순 있겠지만, 하지만 그게 늘어지면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촬영은 아트로 하고, 편집은 상업적으로 하는 나의 딜레마가 아닐까. 예술가처럼 찍고, 장사꾼처럼 편집하는. 항상 찍어놓고 보면 한 40분, 50분씩 남는데, 어떤 사람들은 안 집어넣은 40분이 더 좋더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편집도 예술가처럼 하려고. (웃음)

-<반칙왕>이나 <조용한 가족>에서는 흔히 사회 요건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회 속의 사건들과 일정하게 맥을 같이했다면,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은 거기에서 좀더 자유롭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다. 어떤 점에서는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이 한 영화고,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이 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네 영화를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누군가 이야기하더라. 앞의 영화들이 이야기성을 가지고 만들었다면,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은 시청각적인 느낌과 이미지로 표현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욕구가 있었다. 특히 <달콤한 인생>은 어렸을 때 봤던 누아르나 액션영화에서 받았던 시청각적인 쾌감을 온전하게 관객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것이 영화적 동기가 됐던 것 같다. 사실은 그게 이 영화를 만들었던 큰 모티브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를 두편밖에 안 했다는 생각도 든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 이렇게 한편.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이렇게 한편. 두편씩 같은 성질의 영화들인 거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더 잘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 삼아 프로듀서나 미술감독에게 다음 영화부터는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전에 가지고 있던 것과 내가 지금 경도되어 있는 것의 이상적인 만남을 다음 작품부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또 그렇게 갈 것 같다. 아, 그리고 이거 꼭 넣어달라. <달콤한 인생>에서 같이 일한 배우들은 멋진 배우들이기 이전에 멋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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