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4월9일(토) 밤 11시45분
클로드 샤브롤을 비롯한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미국영화의 전통은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언급했듯, 샤브롤 감독은 히치콕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초콜릿 고마워> 역시 비슷한 사례로 지적되곤 한다. 범죄, 그중에서 살인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를 통해 샤브롤 감독의 영화는 관객의 도덕의식뿐 아니라 사회적 모순까지 심문하고 고찰하는 과감성을 보이곤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의식>에서처럼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하고 있으며 변함없는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명망 높은 피아니스트 앙드레 폴란스키는 초콜릿 회사 사장 미카와 재결합한다. 미카는 평소 주변 사람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선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아들 기욤이 있는데, 앙드레가 미카와 헤어져 지내던 동안 함께 살았던 여자 리즈베스가 낳은 자식이다. 불행하게도 리즈베스는 기욤이 여섯살 되던 해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부다페스트 피아노 대회에 참가하려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던 잔느는 어머니 루이즈와 친구의 대화를 듣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태어나던 날 병원에서 자신이 기욤과 바뀌었다는 것이다.
<초콜릿 고마워>는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TV드라마처럼 어느 인물의 출생의 비밀과 뒤엉킨 가족사를 펼쳐 보인다. 자신의 실제 부모가 누군인지 의심하기 시작한 잔느는 앙드레를 만나 아버지 혹은 스승을 만났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앙드레 역시 자신이 고대하던 제자를 만난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는 것. 여기에 다른 모티브가 끼어든다. 샤브롤 감독의 영화에서 ‘음식’은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로 종종 쓰인다. 그것은 단순한 소품에서 살인의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곤 한다. <초콜릿 고마워>에선 초콜릿 음료가 하나의 예가 된다. 선하게만 보이는 한 인물이 가족을 위해 타주는 초콜릿 음료 속에, 죽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히치콕 감독의 <의혹>(1941)에서 부분적인 모티브를 빌려온 것으로, 샤브롤의 영화가 미국영화의 재해석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콜릿 고마워>에서 음식의 소재는 단순한 소품을 벗어나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좀더 충격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영화에선 음악 역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피아노곡이 쓰이고 있는 <초콜릿 고마워>의 음악은 조용하고 단순하게 들리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앞으로 예정된 거대한 파국을 예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의식>이 그렇듯 <초콜릿 고마워> 역시 샤브롤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 중에서, 챙겨볼 작품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