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30대 노처녀들의 속시원한 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2005-04-07
글 : 남지은 (<한겨레> 기자)
<올드미스 다이어리> 시청률 15% 비결은 공감대 형성

개인적으로 <올드미스 다이어리>(연출 김석윤, 극본 최수영)를 정말 좋아한다. 지난해 11월 첫 방영 때부터 이 지면을 빌려 소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지만 사실,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안녕, 프란체스카>(MBC)처럼 방영 몇회 만에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세간의 관심을 끈 것도 아니요, <귀엽거나 미치거나>(SBS)처럼 ‘시트콤 스타’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아니니, “이 시트콤 정말 좋아”란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일반화하려는 우려의 가능성이 컸다.

물론 <달려라 울엄마>를 만든 김석윤 PD의 작품이라는 점으로도 이야기는 됐겠지만, 이는 “내용으로 승부하고자 일체의 홍보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김 PD의 의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한데 이제 대의적인 명분이 생겼다. 지난 3월24일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시청률이 15%를 넘어선 것이다. 시트콤이 넘쳐나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여느 시트콤들이 9∼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연 앞선 수치다. 입소문을 탄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크다. 그러니 전국의 15%가 이 시트콤의 진가를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그 수치를 핑계 삼아 이 기회에 한번 훑어보도록 하자. 4개월이란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이 시청자들을 ‘제발’로 찾아오게 했는지를 말이다.

일단, 미처 내디디지 못한 이들을 위해 줄거리부터 간단히 소개하자면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30대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다. 31살의 세 친구 최미자(예지원), 김지영(김지영), 오윤아(오윤아)를 중심으로 ‘일’과 ‘사랑’에 관한 고민이 매회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물론, 60살 할머니들의 이야기나 중년 남성의 이야기도 펼쳐지지만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얻은 15%의 공신력은 바로 이런 ‘노처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노처녀’들의 공감대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보단 “그래, 나도 그랬었지”, “맞아, 정말 그래” 등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양 손뼉을 치게 만드는 것.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을 한바탕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가감없이 쏟아내고 싶었다”는 애초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살아난 셈이다.

그래서 <올드미스 다이어리>에는 ‘정곡’을 찌르는 에피소드들이 주로 등장한다. 옛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얘기에 괜히 마음이 상하고(2회), 조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게 여자의 행복일까를 고민하고(22회), 이 남자를 놓치면 다른 남자를 못 만날까 두렵고(52회), 아직은 나도 잘 나간다는 걸 증명해보고 싶은 묘한 심리까지(26회), 노처녀가 아니고선 느낄 수 없는 소재들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들 에피소드들은 정극을 연상시키듯 꽤 담담하게 표현되고 있어 30대 여성들이 마치 자신의 일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극중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겐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자신의 심리를 대변해주는 일기장이 될 수 있다”는 김 PD의 설명은 그래서 아주 적절하다.

하지만 자칫 흥미위주로 흐를 수도 있었던 ‘노처녀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닿을 수 있었던 데는 실제 비슷한 또래인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몫한다. 오버하는 말투나 행동으로 웃음 만들기에 급급했던 기존 시트콤과 달리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캐릭터의 감정과 절제된 대사들이 세밀히 묘사된다. 김 PD는 “정극보다 더할 때도 많다”고 강조한다. 특히 극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예지원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디테일한 행동들은 김지영과 오윤아의 2% 부족한 연기를 채워줄 만큼 뛰어나다. 지난 14일 방송된 ‘당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습니다’편에서는 삼각관계에 놓인 여자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 “내가 다 떨려올 정도로 감정이입이 됐다”는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을 정도다. “앞으로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예지원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공감대 형성과 함께 인기를 더해줄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중론이다.

미자, 지영, 윤아와 함께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60대 할머니 세 자매 김영옥, 한영숙, 김혜옥의 호연도 쏠쏠한 재미를 던져주고 있다. “30대 싱글 여성들을 통해 ‘리얼리티’를 강조했다면 60대 할머니 세 자매를 통해서는 시트콤의 기본인 ‘웃음’에 충실하고 싶다”는 김 PD의 바람은 30대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게 티격태격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 “할머니들의 등장에 칙칙함이 아닌 톡톡 튀는 매력을 주어 새롭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평가다.

이런 유쾌한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노처녀에게 가장 큰 적인 가족을 감싸주는 캐릭터로 설정한 점도 이 시트콤이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의 가족은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이자, 인생의 조언자로 그려지고 있다. 할머니들을 비롯해 임현식이 맡은 아버지 캐릭터나 외삼촌은 권위를 강조하기보단 이해하는 역할로 결혼 스트레스에 상처받은 미자를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극중에서 가족은 결혼 스트레스를 주는 짐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마음의 고향임을 표현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PD의 말은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기도 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미자와 지 PD, 정민씨의 삼각관계가 정리되는 데로 좀더 본격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그들을 흡수하고자 했다면, 앞으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임현식을 중심으로 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 새롭게 전개되며 다양한 연령층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 시트콤을 표방한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잘못된 판단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공감대 하나만으로 30대 여성들을 사로잡은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아,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시트콤’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김석윤 PD 인터뷰

“옆집 사람들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봐주길”

-쟁쟁한 시트콤을 물리치고 언제나 1위다.

=초반의 부진을 떠올리며 대기만성형 시트콤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처음엔 마니아층만 형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편성상으로 어려움도 많았고, 앞뒤 프로그램에 따라 결과도 천차만별이라 시청률 부분이 안정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입소문으로 알아주길 바라며 일부러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공감대 형성이 인기비결이다. 소재는 어떻게 찾아내나.

=작가들이 30대 싱글이라 경험담에 많이 의존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 여성의 시각은 어떨까를 생각하기도 하고, 요즘엔 시청소감에서 채택하는 경우도 많다. 일주일에 12개의 아이템을 섞어 가야 하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템은 항상 허덕인다.

-정극 같은 시트콤은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여자 세명을 <섹스 & 시티>처럼 갈 것이냐 <미녀 삼총사>처럼 갈 것이냐. 전자는 드라마에 치중해야 하고, 후자는 해프닝에 치중한다. 시트콤이기 때문에 후자에 끌리기도 했지만 ‘공감’을 우선시했다. 웃음과 함께 메시지도 주고 싶었다.

-특정 타깃을 겨냥한다는 건 다시 말해 아닌 타깃이 아닌 사람을 잃을 우려도 있다.

=30대 초반의 여성과 남자들은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외의 연령층은 할머니 라인의 코믹함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우현(극중 미자의 외삼촌)의 캐릭터가 전체적인 연령에서 사랑받고 있고 할머니에 대한 호감도도 플러스되는 과정이라 앞으로는 전 연령대를 타깃으로 한 코미디가 많이 나올 것 같다.

-여성민우회가 주인공들이 결혼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을 했다.

=이 시트콤을 통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사랑이다. 메인타이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건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이지 결혼이 아니다.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고 해서 결혼지상주의라는 생각은 단편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해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홈페이지에 공개 토론방을 마련해놓고 그런 부분들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생활하는 템포 그대로 제작할 것이고 그렇게 봐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옆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본다는 생각으로 너무 결말에 조바심내지 말고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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