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와 이구아나에 열광하는 생물학자이자 군인이며 자기 배를 째서 총알을 뺄 정도의 명의인데다가 첼리스트이기까지 한 전쟁터의 로맨티스트(<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기숙사 책상을 2층 창문에서 내던지며 자폐아 같은 천재 존 내시에게 프린스턴대학의 낭만을 가르치던 허구의 존재(<뷰티풀 마인드>), 도덕의 전문가인 척하다가 애인을 팔아먹고 급기야는 애인에게 총으로 뒤통수를 맞는 마을의 바보(<도그빌>).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낯선 캐릭터, 부드러운 연기, 리드미컬한 영국식 영어로 이상한 존재감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이 모두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금발에 조금 길어 보이는 지적인 얼굴이라는 점을 빼면 딱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의 변신은 매번 유달랐다. 아마 이런 변신술의 선배들을 찾자면 멀게는 로버트 듀발과 존 말코비치, 가깝게는 베니치오 델 토로가 있을 터이다. 약삭빠르거나 이기적이거나 마초적 완력을 쓰는 것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이고, 약간 덜떨어져 보여 누군가 채워줘야 할 듯하고, 승부에서 이기기보다는 친구들과 맥주나 기울이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 이런 배우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워킹 타이틀사의 로맨틱코미디에서 주인공을 맡는 것이다. 물론 자격요건은 최대한 휴 그랜트의 매력 못지않은 미덕을 갖출 것. 런던에서 태어난 데다가 할머니와 부모가 배우 출신이며 누나는 작가인 출신 성분에 웨스트 엔드 연극 데뷔가 이력서의 첫줄이니 어디 빠질 데가 없다.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활약한 1년이 있으니 휴 그랜트의 지적인 영국 영어에 견주어도 뒤처질 게 없다. 휴 그랜트의 100만달러짜리 미소가 없으면 또 어떠랴. 그만큼 미끄덩거리는 버터의 느끼함이 없으니 담백함을 내세우면 된다.
게다가 한물간 테니스 스타의 러브스토리라. 서른넷의 나이는 이제 편안해 보이고, 191cm이나 되는 큰 키는 강력한 포핸드 서비스를 성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니 이 또한 적역 아니랴. <윔블던>은 걸작에 대한 욕망을 애초부터 접고, 테니스에는 열광하면서도 정작 몇 십년간 윔블던 트로피를 가져간 적이 없는 영국인들의 노골적인 애국심을 자극하는 데 치중한다. 그동안 보아온 워킹 타이틀의 준척급 작품은 당연히 아니지만, 폴 베타니의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연기가 이 작품을 졸작의 무덤에서 건져낸다. 커스틴 던스트와 공도 없이 테니스를 치는 흉내를 내며 안토니오니의 <욕망>에 오마주를 바칠 때, 자칫 유치한 러브신이 될 만한 장면엔 품격이 흘러넘치지 않는가. 아마 아내가 된 제니퍼 코넬리도 이런 매력에 점수를 높이 주지 않았을까.
그 품격이란 게 젠체하지 않고, 안에서 잘 절제되어 우러나오며, 절제가 심한 나머지(아니면 집안 환경이 워킹 타이틀 로맨틱코미디스러운 것인지) 조금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의 영화 속으로 마음 편하게 자맥질하고 들어가게 되는 미덕이 아닐는지. “나는 영국인들이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사랑해요. 우리는 그러죠, 그 사람 우리랑 닮았어, 좀 바보 같아.” 그가 좋아하는 배우들도 잘난 척하기보다는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여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캐리 그랜트, 윌 스미스, 휴 그랜트 같은 이들은 멋지게 해내죠.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데다가 자기를 낮추잖아요. 그건 정말 힘든데 말이죠. 그런 이유가 다른 데 있을 수도 있겠지만.” 휴 그랜트는 정말 큰 자극이자 부담이었을 것이다. “모자를 벗고 경배를 드려야죠, 그렇게 사랑스럽고 웃길 수 있을까. 그건 지랄맞게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겸손하고 비어 보인다고 해서 그를 만만하게 보고 카메라를 들이대지는 말지어다. 세번이나 카메라맨을 때려 갈비뼈와 턱을 부서뜨린 전력이 있으니 말이다.
파파라치처럼 괴롭히지 않겠다는 맹세만 한다면 폴 베타니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어깨에서 힘을 빼고 숨결을 고른 뒤 낭랑하면서도 활기차고 억센 런던 악센트로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지금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랍니다. 난 정말 유쾌한 사람이고요, 하느님은 하늘에 있고요. 엿 같은 것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