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와 주노는 방년 15살의 파릇파릇한 아해들이지만, 재희와 준호는 15×2(+α)의 나이를 먹은 늙수그레한 연인 사이였다. 사귀기 시작한지도 어언 몇 해가 흘렀으며 얼마 전 나란히 삼십대의 문턱에 진입한 그 한 쌍. 그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질문이 ‘대체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거야?’ 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혼? 언젠가는 해야겠지. 둘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돈이었다.
준호는 장남이었다. 일찌감치 생활능력을 상실한 부모를 위해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태야했다. 오래 전 주식투자로 진 빚도 아직 남아있었다. 콧구멍만한 직장의 월급은 종종 밀렸다. 그럴 때면 돌려 막은 카드의 결제에 문제가 생길까봐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곤 했다. 제 2금융권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재희는 계약직이었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인 셈이었다. 결혼하고 계속 지금의 직장에 근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서른 넘은 기혼여자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명명백백했다.
서울 혹은 그 언저리에서 신혼집을 얻으려면 수중에 몇 천만 원이라도 쥐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재희는 일일 연속극 속 새댁들처럼 시집에 들어가 시부모와 시동생들과 함께 와글와글 부대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긴 그러고 싶어도 그럴만한 여유 공간도 없었지만. 가끔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갈 때면 재희와 준호는 작은 한숨을 뱉어내곤 했다. “세상에는 집들이 저렇게 많구나. 저 사람들은 다들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러게 말이야. 결혼하고 집사고 애 낳고. 요즘 같은 시대에 그걸 아무나 할 수 있냐.” “참, 자기야. 그거 알아? 1.2.3 운동이라고. 대한 가족보건복지협횐지 어딘지 하는 데서 캠페인 벌이더라. 결혼한 지 일년 안에, 애 둘을, 서른 살 되기 전에 낳으라는 거래.” “으하하, 고난이도 개그냐? 웃찾사에 나가보라고 해.” “그치? 분수도 모르고 1.2.3 운동을 따라하면 40대에 파산한대.” 큰 소리로 웃었지만 입맛이 썼다. 그들은 동시에, 얼마 전 같이 보았던 영화 <제니, 주노>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열다섯 살의 중학생들이 사랑을 하여 아기를 가지고 결국 그 아기를 ‘지켜낸다는’ 그 영화.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에서 한 해 동안 낙태당하는 태아의 수가 200만에 가깝다는데, 초등학생들도 임신을 하는 마당이라는데, 사실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재희와 준호는, 차마 상대방에게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웃기는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심지어 그 애들이 부럽기도 했다. 세상에는 다만 맘 내키면 아기를 만들고 또 ‘쑴풍’ 낳기만 하면 되는 커플도 있는 것이다. 낳아놓기만 하면 뒤처리는 모두 유복하고 자애로운 어른들 몫이다. 아기는 사랑과 정성을 담뿍 받으며 정상적인 중산층의 어린이로 자랄 것이다. 그러니 <제니, 주노>의 진정한 주제는, 애국도 부모 잘 만나야 할 수 있다는 것. 출산율 저하에 혀를 차며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르신들께서, 입이 찢어지도록 흐뭇해 할 영화임에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