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피기스의 <타임코드>는 소쿠로프의 <러시안 방주>보다 2년 먼저 원 테이크로 제작되었다. 그것도 4대의 비디오캠으로 원 테이크 동시촬영이라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폐쇄회로를 보는듯한 4개의 화면은 있지도 않았던 편집 작업을, 끊임없이 화면을 선택해서 봐야하는 관객의 몫으로 돌려버린다.
만일 <타임코드> DVD가 일반적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면 이 영화를 4회 본들 1회 본 것과 큰 차이를 얻긴 힘들었을 것이다. 사운드가 4화면서 균등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 화면에만 집중되어 나머지 화면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DVD는 오디오 믹스 기능을 채용하여 장면별 사운드 선택이 가능토록 하였다. <타임코드> 제작시 총 15번의 촬영이 있었는데 DVD에는 ‘테이크 15’인 극장판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테이크 1’이 함께 담겼다. 음성해설 또한 지원하므로 이 DVD를 100% 정복하려면 10회 정도는 감상해야 된다. (오디오 믹스 기능도 없는) 필름으로는 도저히 감상할 수 없는 방식의 이야기를 DVD는 담았다.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작년 베니스영화제서 상영 도중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작품이었다. 44분 동안 대사 없이 상영되다 첫 대사가 터져 나왔을 때 관객들은 감격스런(?) 박수를 쳤고 이후에도 여러 번 야유성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은 <지금 거기는 몇 시?>에서 시계를 훔친 뒤 이강생이 영화 보던 그 극장서 일어나는데, 파리에 유령이 되어 나타났던 아버지가 또다시 유령이 되어 자기영화를 본다.
이 영화에는 신기한 장면이 있다. 바로 절름발이 여인이 객석을 청소하는 장면을 4분 동안 롱테이크로 잡은 부분이다. 영화 속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묘한 경험을 한다.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분명 텅 빈 객석에서 바라보았을 스크린속의 또 하나의 텅 빈 객석은,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 속의 유령 관객이 되어버린 것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경험은 대화면의 홈시어터로도 느낄 수 없다. 시끄러운 타란티노와는 달리 옛 홍콩영화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과묵하게 표현하는 차이밍량의 영화를 국내 개봉관서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DVD는 이강생의 데뷔작 <불견>도 함께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