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흑인 주연 영화의 잇단 흥행, 흑인 문화의 주류 문화화를 반영
2005-04-13
글 : 오정연
그레이트 블랙파워
<게스 후>

지난 3월 넷쨋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는 버니 맥 주연의 리메이크영화 <게스 후>였다. 개봉주에 2천만달러 수익을 올린 이 영화의 성공은 개봉 첫주 8300만달러를 벌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대박에 비하면 소박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2005년이 3개월밖에 흐르지 않은 상황에서 <게스 후>를 포함하여 흑인이 주연한 영화 다섯편이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음을 떠올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흑인 아버지(버니 맥)가 딸의 백인 남자친구(애시튼 커처)와 처음 대면하면서 드러나는 인종문제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는 이 영화가, 1967년에 만들어진 원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현대화하면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역할 바꾸기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주된 갈등은 백인 아버지(매트 드레이튼)와 딸의 흑인 남자친구(시드니 포이티어)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런 식의 흑백 인종의 역할을 바꾼 리메이크는 현재 미국 문화에서 일종의 유행과도 같다.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탐정시리즈 <코작>은 그리스계 백인배우가 연기했던 주인공을 흑인배우 빙 레임스로 바꾸어 리메이크된다.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이 주연했던 영화 <황금연못>은 브로드웨이의 연극무대로 옮겨지면서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인물을 흑인이 연기하게 됐다. 하워드대학의 재닛 데이츠 교수는 이에 대해 “흑인과 백인 사이의 오랜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고 있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을 할리우드가 받아들이게 됐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2002년 덴젤 워싱턴과 할리 베리가 아카데미 남녀 주연상을 차지하고, 올해 제이미 폭스와 모건 프리먼이 나란히 남우주연과 조연상을 받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카데미 상이 흑인배우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반영한다면, 흑백 인종의 역할을 바꾸거나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현상은 흑인 문화를 백인들이 친근하게 여기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흑인 감독이자 드라마 작가인 조이 루스코 케켄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힙합에서 찾았다. “힙합은 30년 전 시작됐고, 어릴 때부터 힙합 문화를 접한 백인 세대들이 주류가 되면서 흑인 문화가 주류 문화에 완전히 스며들었다”는 그의 말은 지금의 변화가 단지 유행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크린 속 배우의 피부색이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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