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엉뚱한 SF적 상상력, 해외신작 <히치하이커스 가이드 투 더 갤럭시>
2005-04-13
글 : 박혜명

누군가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인이 설계한 슈퍼컴퓨터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은하계는 초지성적이며 범차원적인 어떤 뛰어난 종족이 지배해왔고, 지구는 생명과 우주에 관한 심오한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 그들이 고안한 일종의 실험물인 것이다. 일명 ‘깊은 생각’이라고 하는 또다른 슈퍼컴퓨터가 750만년간 작업한 끝에 만들어진 지구는, 그러나 은하계 초공간 개발위원회의 ‘초공간 이동용 우회로 건설’ 프로젝트의 걸림돌이란 이유로 느닷없이 철거되고 만다.

이 황당한 상상력은 더글러스 애덤스라는 영국 작가에게서 나왔다. SF와 코미디를 결합해 말 그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어했던 애덤스는 BBC 라디오방송국 프로듀서 사이먼 브렛의 공조로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써내려갔다. 지구 철거 직전에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지구인 아서 덴트, 자신의 정체가 실은 지구 조사를 떠맡은 우주인이었다고 밝히는 아서의 친구 포드 프리펙트, 고도의 지능을 썩힌다고 우울해하는 편집증 환자 로봇 마빈, 노르웨이 해안의 아름다운 피요르드 지형 설계로 상을 수상한 슬라티바트패스트 등 별난 개성으로 뭉친 캐릭터들, 우스운 농담으로 치환돼버리는 생명에 대한 진지한 논제들, 과학적 근거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엉뚱한 SF적 장치들. 개연성과 형식과 논리를 무시한 채 자유분방하고 익살스러운 농담처럼 흘러가는 애덤스의 SF코미디는 1982년 첫 주파를 탄 이래 곧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후 TV드라마, 소설, 게임, 연극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온갖 장르로 소화돼온 매력적인 영국산 아이템이 영화화의 운명을 맞았다. 휴고상 수상에 빛나는 소설 <히치하이커스 가이드 투 더 갤럭시>는 “시나리오는 나 혼자 쓰겠다”는 원작자의 조건을 수용한 파라마운트가 판권을 사들이면서 2000년 영화화 작업이 시작됐다.

<히치하이커…> 또는 팬들 사이에서 <h2g2>로 널리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에야 실질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2001년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사망이 프로젝트를 휘청거리게 했고, 블랙코미디 SF영화를 위한 예산에 인심이 박했던 파라마운트가 1억달러 투자를 결심한 디즈니에 판권을 넘겼다. 감독도 제이 로치에서 미셸 공드리로, 다시 영국 출신 신인감독 가스 제닝스로 바뀌었다. 원작의 감성을 살려 캐스팅도 영국 배우들로만 해야 한다는 팬들의 호소와 달리 모스 데프, 샘 록웰, 존 말코비치 등 미국인들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가스 제닝스 감독은 “기존의 SF영화들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과 “원작의 오리지널 컨셉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함께했다. 영화 <히치하이커…>는 최근 5권으로 국내에 완역 출간되기도 한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만 각색해 만들어진다.

<히치하이커스 가이드 투 더 갤럭시> 예고편 보기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