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니콜스의 영화에서 4는 불안한 숫자다. 데뷔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가 그랬고, <클로저>의 전신이라 할 <애정과 욕망>(1971)이 그랬다. 세 영화엔 네명의 배우만 등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넷을 다루는 감독의 손길이 칼자루를 쥔 듯 매섭다. 네 캐릭터는 탈색된 사회풍경을 뒤로한 채 몸짓이 아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위치를 설정한다(그것은 물론 <누가 버지니아…>와 <클로저>가 연극에서 출발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대화는 실패하고, 심리상담에 응한 우리의 마음도 쓰라려온다. 그러니 관계에 실패했던 자는 마이크 니콜스의 영화를 조심해야 한다. 마음의 위로는커녕 상처에 생채기를 더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해?’ <애정과 욕망>의 두 남자는 대학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그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후 결혼과 동거와 이별을 경험하고 늙어가면서 그들은 그 대답을 구하는 게 점점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이크 니콜스는 <클로저>에서 시작점으로 돌아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클로저>는 ‘런던의 아메리카인’과 그녀에게 다가온 세 사람의 이야기다. 전직 스트립 댄서 앨리스는 뉴욕을 떠나 런던에 도착한 첫날 부고담당 기자 댄을 만나고, 댄은 사진작가 안나를 보고 첫눈에 반하며, 안나에겐 피부과 의사 래리가 다가선다. 그런데 이건 서툴게 꼬인 현대식 사랑게임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클로저>엔 흔한 사랑의 대화라곤 없다. 연인들의 유치한 속삭임은 위트로 대체되고, 그들의 말은 줄곧 상대방의 흉부를 찌른다. 그들은 분명 타인이었으니, 앨리스가 댄에게 했던 첫마디는 ‘안녕, 낯선 남자’였고, 안나의 사진전 주제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4년의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들은 결국 ‘친밀한 타인들’일 뿐이다.
한 여자가 뉴욕의 길을 걸을 즈음에야(연극의 결말과 다르다) 우린 한 남자가 실패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언, 내털리 포트먼은 그렇게 잭 니콜슨, 캔디스 버겐, 아트 가펑클, 앤 마거릿의 얼굴과 리처드 버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관계와 오버랩된다. DVD의 영상은 원경이 간혹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으나 전체적으론 말끔하다. 부록으론 데미언 라이스가 노래한 <The Blower’s Daughter>의 뮤직비디오와 예고편이 제공되는데, 부록의 빈약함이 오히려 영화에 대한 집중을 더한다. 신기한 효과, 사랑스런 DV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