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하의 C&C]
[백은하의 애버뉴C] 22nd street / 사람은 절대로 안 변한다
2005-04-15
글·사진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소녀들의 삶도, 어른들의 삶도 펠린드롬의 시작이거나 끝일 뿐이다.

“인간들은 안 변해. 스스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몸무게가 변하고, 얼굴이 변하고, 뭐 남자가 여자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진짜로는 안 변해. 전혀.” 이번 주 맨하탄에서 개봉하는 토드 솔론즈의 신작 <펠린드롬스>(Palindromes)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건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같은 고민이 담긴 일기장

어쩌다 보니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나는 도통 글쓰기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던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꾸준히 썼던 글이 있다면 바로 일기다. ‘충효 일기장’ 이라고 겉장에 쓰여진 초등학교 일기장부터, 연초 세일할 때 구입한 ‘MoMA’의 다이어리까지. 일년에 한 권씩 사서 쓰고 있는 일기장을 모아놓으면 이제 20권쯤 된다. 물론 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디테일한 대사까지 쓰던 시기도 있었고, 간단히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을 쓸 때도 있었다. 고민이 많거나, 누굴 짝사랑 할 때는 일기장이 빼곡히 채워졌고, 세상이 편하거나, 연애가 술술 풀릴 때면 그 기간 동안은 백지상태로 남겨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일기장 속의 내용은 대부분 힘들고 고민이 많은 시절의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가끔 갖는 행사는 그 많은 지난 일기장을 쭉 읽어보는 것인데 그럴 때면 놀라는 것이 내가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심지어 초등학교 때도 지금과 비슷한, 어쩔 때는 정확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 보다 키도 컸고, 몸무게도 늘어났고, 책도 영화도 더 많이 보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많아졌지만, 내 고민이나 문제의 근원은 늘 똑같았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사람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흘러나오면 그냥 두 손 두 발을 들 수 밖에. 그렇게 사랑은 변해도, 사람은 안 변한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해피니스>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던 토드 솔론즈 감독의 신작 <팰린드롬스>(palindromes)는 “아기를 갖는 것이 꿈”이었던 열 세 살 소녀 아비바의 짧지만 긴 여행기다. ‘회문(回文)’이란 뜻의 ‘팰린드롬’은 꺼꾸로 읽어도, 바로 읽어도 똑 같은 뜻이 되어버리는 말, 예를 들어 ‘eye’ 나 ‘rotator’같은 단어들, 혹은 ‘다들 잠들다’ 나 ‘소주 만병 만 주소’ 같은 문장들을 일컫는 말이다.

주인공 아비바(Aviva- 이 이름 역시 팰린드롬. 히브리어로 ‘봄날’이란 뜻이라고 한다)는 한 소년과 섹스를 하고 아이를 갖고 부모로부터 낙태를 강요당한다. 집을 도망 나와 떠돌던 그녀는 트럭 운전수와 만나 “너무 행복했던” 하룻밤을 보내고 사랑과 관용으로 충만하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크리스찬 대체가족을 만나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바로 아비바가 각기 다른 8명의 소녀(혹은 여자)들에 의해 연기되기 때문이다. 나이도, 인종도, 몸집도, 머리색도 다른 그녀들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렇듯 다르지만 아비바의 삶은 자신의 이름이 그러하듯 결국 변화 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렇듯 <로즈마리 베이비>의 자장가가 인도하는 이 소녀의 절망적인 이야기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미운 오리새끼 ‘도온’ 수난기의 확장판이다.

뉴욕개봉에 맞추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안젤리카(Angelika)극장을 찾은 토드 솔론즈는 자그마한 체구에 웃음기 없이 시니컬한 표정을 가진, 그리고 약간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다. 남자라는 정체성을 타고 났지만 예민하고 불안하게 움직이는 눈빛만큼은 소녀들의 일기장과 서랍에 대한 정확한 세부도를 그리고도 남을 법했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질문과 대답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 영화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두 번째 이야기 같다. 그런데 왜 주인공 도온(헤더 마타라조)을 다시 캐스팅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제안을 했는데 다시는 그런 역할을 하기 싫다고 해서 나도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었다”고 이야기 했다. 어쩌면 <인형의…>의 마지막 문장처럼 헤더는 그 지옥을 즐겁게 회상할 만큼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게 아닐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도 삶은 여전히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든지.

희망없는 삶, 그것이 진리라면 단지 지금의 여정을 최대한 즐길 것!

‘여행’이란 돌아오는 것이 전제가 된 단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떠남’이나 ‘이별’이란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긴 여행이건, 사건 사고로 점철된 사연 많은 여행이건, 돌아와도 변하는 건 없다. 소녀들의 삶도, 어른들의 삶도 영원히 회귀되는 펠린드롬의 시작이거나 끝부분일 뿐이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나아, 계속 수업시간에 이름을 불러댈 테지만 적어도 조금 덜 부르거든” 이라고 하던,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도온의 오빠 마크 말대로, 나이가 든다고 달라지는 건 그 정도의 사소한 차이일 뿐이다.

<펠린드롬스>는 그 인정하기 힘든 사실을 8개의 장으로 나누어 조목조목 설득시킨다. 아니, 이렇게 절망적인 영화가 세상에 또 있을까. 영원히 도돌이표를 그리는 인생이라니. 태어난 대로, 주어진 대로,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변화 없고, 희망 없는 삶이라니. 하지만 만약 그것이 이 세상의 진리라면,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다행히 낙태 당하지 않고) 이 여행을 시작한 우리들에겐 이제 단 하나의 희망밖에 남겨진 것이 없다. ‘변화’를 이 여행의 목적으로 두지 말 것. 단지 지금의 ‘여정’을 최대한 즐길 것.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의지’라면, 일기장 사이의 변화를 체크하는 게 아니라 그 사소한 디테일을 읽는 재미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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