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류승완·정지우·장진·김동원 5명의 감독
사회적 약자·소수자 이야기 제멋대로 풀어나가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섯 감독의 단편을 묶어 만들었던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의 2편에 해당하는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이 오는 30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다.
다운증후군 소녀의 실생활을 담담하게 그린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박경희 감독), 한 남자가 가지고 있는 온갖 차별의식을 ‘종합선물세트’로 보여주는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류승완 감독), 이 사회에 섞여들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들의 삶의 단면을 담은 <배낭을 멘 소년>(정지우 감독) 등을 통해 다양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제각각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특히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톡톡 튀는 발상과 극적인 재미로 한껏 포장해 무겁지 않게 담아낸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은 눈에 띄는 작품이다. 무대는 군부독재 시절의 취조실. 수사관이 운동권 학생을 상대로 온갖 고문을 자행하며 동료들 신원을 캐묻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수사관은 주말은 물론 아내 생일 때조차도 살인적 노동 시간에 시달리는, 그래도 상여금도 고용보장도 없는 비정규직이다.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학생과 교감하게 된 수사관이 학생과 종이 오목을 하다 상관에게 들킬 뻔하는 위기를 학생의 기지로 넘기는 대목은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장진 감독의 주특기인 연극적 연출이 단편의 빠른 호흡과 맞물려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의 심정 변화를 잘 묘사한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적인 것을 잘 찍는 감독이 많았을 텐데 굳이 나를 선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나스럽게’ 가기로 했습니다. 과거 극한의 대립구도였던 고문 수사관과 운동권 학생의 관계를 비틀어 비정규직 문제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겠다 싶었던 거죠. 물론 고문실이라는 영화적 장치가 좀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시대에는 이런 시도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2003년 12월 서울 시내 한가운데서 얼어죽은 중국동포 김원섭씨의 처절한 상황을 카메라가 당사자 1인칭 시점으로 뒤따라간 <종로, 겨울>도 인상적이다.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죽어가는 중국동포의 불안한 시선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연하면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교차 편집으로 끼워넣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원섭씨가 죽어가던 날 밤 나도 우연히 그 부근에 있었더라고요. 당시 그가 처했던 상황과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어 1년 뒤 겨울날 카메라를 들고 나섰습니다.” 김 감독의 카메라는 역지사지의 의미를 곱씹게끔 한다.
이와 함께 인권위가 기획·제작한 인권 애니메이션영화 <별별 이야기>도 5월1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다. <마리 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을 비롯해 권오성·박재동·유진희·이애림 감독이 각각 만든 5편과 박윤경 감독 등 5인 프로젝트팀이 만든 1편 등 모두 6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영화다. 두 작품은 이르면 상반기 중 일반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