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무게가 부담되는 사람과 영화가 있다. 내부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자의식과 외부로부터 부여된 심각한 주제는 송일곤의 어깨에 종종 답답할 정도의 무게로 걸쳐있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선 그 어떤 희망도 비관처럼 들리곤 했다. <깃>은 가볍게 살랑댄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에 순수한 자유가 깃들어있는 가운데, 감독의 맑은 정신은 바람이 되어 깃의 육체를 움직이고 깃의 영혼이 조용히 자리잡게 한다.
<깃>은 작은 섬 우도를 10년 만에 찾은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10년 전의 약속을 기억했던 그에게 다시 1년 후의 약속이 주어진다. 나무 문지방을 갉아먹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 만난 누군가와 자신의 이야기로 진입하며, 돌로 담을 쌓듯 이야기의 천을 짜는 <깃>은 자기반영성이 짙은 영화다. 환경영화제를 위해 만들어진 이 작은 디지털 소품은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자의 진정으로 충만하다. 주변부에 머물던 부부가 재회하는 장면은 예술이 삶보다 크게 느껴지는 귀한 순간 중 하나다. 마법 같은 섬의 밤을 지나온 주인공은 이전과 분명 다른 영화를 만들 것 같다.
<깃> DVD의 영상은 화질의 편차가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그런데도 영화가 좋아서일까? 바람과 습기를 잔뜩 머금었다가도 돌아보면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자랑하는 우도가 사랑스럽기만 하다. 최소한, <깃>의 시간보다 꼭 20년 전에 그곳에 갔던 필자의 기억을 되살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메이킹필름, 뮤직비디오, 포토갤러리 등, 부록도 단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