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오! 영화에 빠진 광란이여, <몽상가들>
2005-04-20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68년 혁명에 대한 베르톨루치식 찬가 <몽상가들>

아둔할지 몰라도 잊혀지지 않을, 젊음과 시네필리아, 68년 5월 학생 운동에 대한 찬가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은 경쾌한 박자로 시작해 에디트 피아프의 떨리는 “Non, je ne regrette rien”으로 끝난다. 당신이 영웅적 유아론(唯我論), 끊임없는 섹스(혹은 풍성한 누드장면들)와 시네필리아에 대한 실내악적 탐닉을 후회하건 안 하건 우습기까지 한 이 영화는 분명히 베르톨루치의 작품이다. 아마 1968년 이후 젊은이들의 “척하기”가 이처럼 텅 비었던 적이 있던가. 멍하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같이 잘생긴 얼굴로 호감스런 느릿함을 지닌 촌놈, 매튜(마이클 피트)는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한쌍의 남매, 거만하고 묘한 이자벨(에바 그린)과 낭만적이고 빤히 바라보는 테오(루이 가렐)를 만난다. <추한 미국인>(The Ugly American, 1963)이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 1950)을 만나다. (실제 배우들도 프랑스 영화계의 유명인들의 자녀들이듯) 유명한 시인의 아이들인 이자벨과 테오는 샴쌍둥이처럼 서로 얽혀 있다. 예쁜 어깨에 나 있는 상처가 둘이 한때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매튜는 이자벨의 라이터와 식탁보의 패턴 사이의 신비한 우주적인 관계를 설법해 진지하고 주름진 아버지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하룻밤을 지내도록 초대를 받는데 아마 그건 마약도 하지 않고 몽롱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리라.

부모는 다음날 긴 휴가를 떠나고 매튜는 집에 남는다. 매튜의 여정은 길고 낯설까? 길버트 아데어의 (영화보다 더 미묘하고 모순적이며 총명한) 소설을 각색한 <몽상가들>은 청소년기의 신성함이 짙게 깔려 있지만 시대의 여운은 전혀 없다. 빛은 꿀처럼 떨어져내리고 재니스 조플린은 스테레오에서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이자벨의 옷은 너무 세련되고 마오쩌둥은 우스꽝스럽게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끊임없는 표시들에도, 진정 영화는 <인터뷰>나 <베니티 페어> 잡지의 접혀 있는 광고 사진처럼 지금 펼쳐질 듯하다.

(출처야 무엇이든 간에 추모 밴드의 작품인 듯한) 클래식 로큰롤로 치장되고 영화 클립들로 처발라져 있는 <몽상가들>은 때때로 서툰 <포레스트 검프> 같다. 베르톨루치는 당대의 뉴스릴과 나이 든(<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순진한 시네필리아 정신이었던) 장 피에르 레오의 선동적인 연설을 섞어 시네마테크의 설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해고를 보여준다. 더욱 지독하게 베루톨루치는 다양한 30년대와 60년대 영화(<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1960)가 가장 거슬린다) 파편들을 집어넣어 주인공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매튜와 테오가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에 대해 비교하여 논쟁하는 장면이다. 가장 악용된 삽입은 브레송의 <무셰트>(Mouchette, 1967)이다.

근친상간인 듯 보이는 쌍둥이에게 영화 퀴즈가 항상 떠나질 않고 비오는 오후는 계속된다. 테오가 이자벨이 흉내낸 마릴렌 디트리히의 <푸른 천사>(The Blue Angel, 1930)에 나오는 고릴라 춤을 맞히지 못했을 때 자기 침실 벽에 신전처럼 걸린 <푸른 천사> 포스터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위를 하도록 벌칙을 받는다. 곧 이자벨도 테오가 흉내낸 폴 무니의 <스카페이스>의 죽음을 맞히지 못하고 매튜에게 호의를 베풀게 된다. 뚱한 테오가 오믈렛을 만들고 미국인이 부엌 바닥에서 도도한 이자벨의 몸 위에 오르는 동안 거리에서 일어나는 혁명!

<몽상가들>은 나쁘지만 비슷하게 과장되었던 <리틀 부다>나 <스틸링 뷰티>와 달리 지루하지 않다. 베루톨루치는 매혹적인 아파트를 보여주는 기술적 도전을 뛰어넘는다. 셋이 욕조에서 마약에 취해 있을 때에도 카메라는 이들과 함께 몽롱해져간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동성애를 하리라고 기대는 너무 기대마시라. <몽상가들>은 베루톨루치의 뉴에이지식 “나릿님” 판타지였던 <하나의 선택>처럼 눈치없게 거슬리진 않으니까. 다만 만취해 있을 뿐이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꼽는다면 난 데이트 장면을 고르련다. 매튜와 이자벨이 뒷줄에 앉아 <여자는 도울 수 없어>(The Girl Can’t help it, 1956)를 보면서 서로를 애무하고 거리로 나와 키스하고 있는 동안 상점 진열장 속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장면들은 다시금, 혁명!

오, 영화에 빠진 광란이여! 시작 부분에 나오는 입을 쩍 벌리고 <충격의 복도>(Shock Corridor, 1963)를 보던 시네마테크의 관객이 잘 꾸며낸 마지막 장면과 어울리며 비애를 느끼게 한다. 결국 베르톨루치는 이 “무서운 아이들”이 자기들이 찾던 영화를 발견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바로 ‘혁명’이라는 영화를!!! 놀란 매튜를 불운한 관객으로 남기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바로 그때 <몽상가들>은 60년대의 삶에 대한 느낌을, 이 영화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영화로 구체화한다.

번역 이담형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