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배우들에게는 아슬아슬한 리비도가 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동공은 살짝 맛이 가 있고, 그림자는 의심스러우며, 가련한 뱃살만 감춘다면 등덜미의 섹시함 역시 여전하다. <택시 드라이버>(1976), <이지 라이더>(1969), <대부>(1972)의 기운이 아직은 쇠락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에 반해 더스틴 호프먼의 노년은 조금 초라해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훌륭한 성격파 배우는 예전의 아우라를 손에서 놓아버린 듯했다. <졸업>(1967)과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샘 페킨파의 <분노의 표적>(1971)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오랜 추억을 더듬는 듯 아련했다. 그는 늙었고, 차분했고, 조금 심심했다.
그런 이유로, 지난 10여년간의 더스틴 호프먼은 할리우드의 살아 있는 등신불 취급을 받아왔다. <졸업> 이후 이 남자가 거쳐온 필모그래피는 위대한 미국 영화사의 양지에서 빛나지만, <레인맨>(1988) 이후의 작업들은 억지로 끄집어내어야만 간신히 떠오른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재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스피어>(1998)의 실패 이후 영화계를 떠났던 일은 사그라지는 노배우의 조용한 퇴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간간이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면서 활기를 되찾았고, 조금 넉넉하게 할리우드 인생을 돌아보았다. “예전의 나에게 가득했던 스파크를 일시에 잃어버렸었다”고 고백한 더스틴 호프먼은 각본을 쓰거나 첫 연출작을 아무도 모르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마침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이 정해놓은 굴레들을 다 벗어버리지 않아요? 영화의 각본이나 당신 역할의 비중, 영화의 규모에 지나치게 신경쓰진 마세요. 그저 당신이 일하게 될 사람들과 얼마나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을지가 진짜 중요한 것이에요. 그런 식으로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때요?” 사실 편안한 외모와는 달리 한때 더스틴 호프먼은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보다도 더 까다로운 에고를 지닌 배우였다. <투씨>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뒤 “내 인생을 (더스틴과 일하기 전인) 9개월 전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다면 오스카 후보도 반납하겠다”고 말했던 시드니 폴락의 이야기는 제작진을 쥐어짜는 의기양양한 젊은 배우를 가늠케 하고, 아직도 그를 “감정적인 완벽주의자”로 기억하는 동료배우들의 후일담은 선병질적인 천재에 대한 약간의 모멸감이 섞인 선망이었을 것이다.
4년의 공백을 마치고 <문라이트 마일>(2002)로 돌아온 지 3년. 아직까지도 근사하게 컴백을 환영할 만한 작품은 없다. 다만 더스틴 호프먼은 화려한 부활을 굳이 바라지는 않는 듯하다. 그에게는 타오르는 테스토스테론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드 니로처럼 자기를 희화화하는 함정에 빠지거나 알 파치노처럼 끝까지 근사하게 자신을 설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스틴 호프먼은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다른 배우들, 잭 니콜슨,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와는 다르다. 그는 여전히 그 자신으로 머물러 있다. 그는 자기를 패러디하며 새로운 연기생활을 시작하거나, 자기 자신을 재창조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나이를 먹었고, 더 현명해졌고, 더욱 호프먼다운(hoffmanly) 배우가 되었다.” 미국영화연구소 회장인 톰 폴락의 말처럼, 호프먼은 더욱 호프먼답게, 더욱 호프먼스럽게, 더욱 호프먼적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축 처진 가슴을 풀어헤치고 카포에라(브라질 무술)를 연습하는 <미트 페어런츠 2>의 은퇴한 자유주의자도 안쓰럽지 않고 그저 유쾌해 보인다.
“캐릭터 속으로 들어가거나(in character) 올라타고서(on character) 연기한다는 게 더이상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럴 만한 능력을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내가 연기를 할 때는 캐릭터의 한계와 범위를 설정한 뒤에 그것들을 맘대로 어지럽힐 뿐이다. 연기란 건 그렇게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이란 게 원래 그렇듯이.” 강렬한 캐릭터의 아우라를 짊어진 동세대의 친우들과는 달리 더스틴 호프먼은 근사하진 않아도 재미있게 늙어가는 길을 택했다. “이제부턴 캐스팅 제의에 역할의 비중을 따져가며 ‘노!’라고 대답하진 않겠다.” 그게 바로 67살의 자그마한 유대인 남자가 자신의 삶을 연기하는 새로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