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역사 추리극 <혈의 누> 언론에 첫 공개
2005-04-22
글 : 최문희
조선시대의 음산한 핏빛 연쇄살인 사건을 말하다

<번지 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영화 <혈의 누>가 언론 시사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역사 추리극을 표방하는 <혈의 누>는 1808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동화도’라는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무려 4년에 걸쳐 완성된 영화 <혈의 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조선의 근대를 배경으로 한 연쇄살인을 소재로 삼은 기획력과 관객을 압도하는 비주얼이다. <춘향뎐>에서 한국적인 미를 구현한 바 있는 민언옥 미술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고립된 섬 ‘동화도’와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제지소’를 광기와 공포가 서린 귀기 어린 공간으로, 근대와 전통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공간으로 창조해냈다.

제목 <혈의 누>는 이인직의 신소설과는 무관하게 영화 속 연쇄살인의 시작을 암시하는 ‘피비’ 즉 혈우를 뜻한다. 조선 말엽, 종이 만드는 일을 주업으로 부를 축적하며 성장한 섬 ‘동화도’에서 조정에 바칠 종이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수사관 원규(차승원) 일행이 그곳으로 파견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에 일어날 불길한 사건의 전조일 뿐이었다. 이후 5일 동안 5가지 참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섬 전체는 불길한 공포에 휩싸인다. 마을 사람들은 7년 전, 그 곳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 가족이 참형을 당한 ‘강 객주’의 원혼이 일으킨 저주라고 생각하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수사관 원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인은 어김없이 이어지고, 마을에서는 마시는 물 뿐만 아니라 바람에서도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혈의 누>는 과학을 믿는 수사관이 등장하고, 연쇄살인 사건이 저주, 즉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살인이라고 믿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슬리피 할로우>의 설정과 일견 유사하다. 또한 천주교도, 총과 같은 근대적인 요소와 무당, 양반과 상놈이라는 전근대적인 요소가 충돌하는 변화의 시기에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도 떠오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앞서 말한 고립된 공간 ‘동화도’와 ‘제지소’라는 배경이다. 무려 제작비의 1/3을 들여 만든 거대한 세트는 단순한 배경에서 벗어나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주요 사건의 계기와 결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도 높이 살만하다. 주연 차승원과 박용우를 비롯해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중견 배우 오현경, 최종원, 천호진은 등장하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좋은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결정적으로 관객에게 불친절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스릴러, 추리극의 열쇠인 사건의 인과성 부분이 취약한 것이다. 비주얼과 분위기가 주는 긴장감은 관객을 압도하고도 남지만, 스토리텔링 자체가 가진 긴장감은 따라가기 버거울 뿐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또한 18세 관람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나친 잔인함도 어떤 관객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몇몇 불편한 점에도 불구하고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혈의 누>는 여러 면에서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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