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은 지독하게 무기력한 나이다. 생활비가 떨어져 간다는 계산은 할 수 있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집을 떠나면서 엄마는 소년에게 동생들을 부탁했다.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살짝 고백하는 엄마는 철없는 여자아이처럼 보인다. 그 대책 없이 낙관적인 여자는 아마도, 의젓한 큰아들 아키라를 정말로 믿었을 것이다. 믿고 싶었을 것이다. 소년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기다리지도 않는다. 헛된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는 대신 소년은, 엄마의 글씨체를 위조하여 동생들 하나하나의 이름이 적힌 세뱃돈 봉투를 만든다. 가장 ‘덜 상처받는 방법’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터득했다.
생존은 유희가 아니다. 돈은 곧 바닥나고 머리칼은 덥수룩이 자란다. 옷과 운동화가 해지고 전기와 수도가 차례로 끊긴다. 무참하게도,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동생들이 맑고 어린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집을 빠져나와 아키라는 긴 계단을 뛰어 오른다. 마실 물을 받기 위해, 유효기간이 지난 도시락을 얻기 위해,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꽃잎이 흩날린다. 비루한 양식이 담긴 하늘색 플라스틱 양동이를 내팽개치고 소년은 어디로든 도망쳐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윈 어깨에 얹힌 ‘집’을 그만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길고긴 계단을 한 발 한 발 밟고 내려와 굴 속 같은 작은 집으로 묵묵히 되돌아갈 뿐이다.
엄마가 다른 남자의 성(姓)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어렵게 연결된 전화를 그냥 끊어버려야 했을 때에도, 친구들에게서 “쟤네 집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나” 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생애 처음으로 어린이 야구단복을 입고 배트를 휘두르게 된 행운의 순간에도 아키라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차갑게 굳은 막내 동생을 분홍색 트렁크 속에 구겨 넣으면서도, 소년은 울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는, 아키라의 친아빠가 공항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트렁크를 밀고서야 소년은 모노레일을 타고 그곳으로 간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근처의 땅을 파 동생을 묻고 봉곳한 봉분을 만드는 동안 소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소박한 관 위에 흙을 덮는 소년의 손가락이 오래도록 가늘게 떨리는 것을 차마 나는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침은 습관처럼 밝아온다. 공중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리자 아키라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온통 땀에 젖은 목덜미가 어느새 굵어져있다. 견디면서 자란 아이는 단단한 조약돌이 된다. ‘마음으로부터 녹아내린 검은 호수를 흘러가는 별. 아무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보석.’ 얼음처럼 시린 눈동자로, 소년은 사막을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