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정원중, 박광정, 유연수, 세 남자 이야기 <아트>
2005-04-2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5월29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4-8760

연극은 수십번을 되풀이해도 단 한번도 같은 순간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연기하는 사람과 연기를 보는 사람, 무대를 감싼 공기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가 바뀌면 공연 자체가 다른 무언가가 되는지도 모른다. <아트>는 유독 그런 기복이 심한 편이다. 무대장치라고는 하얀 그림 하나와 소파. 한번에 한 페이지가 넘을 때도 있는 엄청난 대사를 쏟아내는 배우도 세명뿐이다. 매번 팀을 바꾸면서 장기공연 중인 <아트>에서 이번엔 가장 연배가 높아 보이는 정원중과 박광정, 유연수가 한팀을 이루었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쓴 희곡 <아트>는 20년이 넘게 절친한 친구로 지내온 세 남자가 추상화 한점 때문에 다투는 며칠간에 집중한다. 정신과 의사 수현은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현대 화가 앙트로와의 작품을 산다. 그의 친구이자 공대 교수인 규태는 잘 보면 하얀 선 하나가 보이는 것도 같은 그 그림에 심취한 수현이 영 못마땅하다. 그들 사이에 끼어 덕수는 평생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믿으면서 살아온 우유부단의 표상. 늦은 결혼을 앞둔 그는 수현과 규태를 말리는 듯하면서도 처가와 본가 사이에서 납작해질 지경인 자신의 처지만 하소연하려고 한다.

40대 배우들이 이어받은 <아트>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나이 때문에 20년 쌓인 우정이 무너지는 순간을 실감하게 한다. 혈기로 뛰어노는 30대가 아닌, 상실의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는 40대. 그래서 육중한 분위기 탓에 고함 한마디에도 무게가 실리는 정원중이 소심하게 목소리를 꺾어 낮추는 장면,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박광정이 토라지는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뼈아프게 마음을 찌른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세 남자가 생각할 틈도 없이 쏘아붙이는 대사는 이 연극의 백미다. 근대성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는 의미를 따지는 추궁, 쫀쫀하게 친구의 아내가 가진 약점까지 비웃는 인신공격은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집요하지만, 공감이 가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우리가 모두 하고 싶었으나 삼키고 살았던 이야기. <아트>는 세월을 알고 사람을 아는 중년배우들을 통해 그 치사한 이야기를 폭로하고 소박한 화해로 돌려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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