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기발 엽기발랄 ‘썬데이서울’
2005-04-22
기발 엽기발랄로 고정관념을 홀딱 깨주마

전북 진안군의 한적한 시골길가에 자리잡은 한 주유소. 살랑대는 봄바람 위로 이상하리만치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주유소 안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봉태규를 중심으로 늘어선 껄렁한 젊은이들은 그렇다 쳐도, 이청아와 함께 선 남자들은 삼국시대 도인을 떠올리게 하는 차림새부터 심상치않다. 게다가 두 무리의 가운데 진을 치고 심판인 양 관망하는 듯한 한 가족의 모습에선 엽기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 틈새로 묘하게도 코믹스러운 기운이 솔솔 피어오르는 순간, “컷!” 하는 외침이 적막을 깬다.

제작·출연진 모두 노개런티, 다시보는 정소녀 김추련

지난 18일, <썬데이서울>의 제작진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영화 전체를 통털어 단 한번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을 찍었다. 각 무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가지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합쳐지는 순간이다. 영화의 중심축은 세가지 각기 다른 사건들을 차례로 목격하게 되는 두 청년.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은, 외계인이 지구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 <맨 인 블랙>이나 텔레비전 시리즈물 <엑스 파일> 못지 않게 그럴듯하면서 황당하다.

“너무 안정적 구도로만 가는 한국영화에서 발상의 틀을 깨부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새로운 시도는 예술영화에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왜, 만화에서도 이현세·허영만 등의 정극보다는 <이나중 탁구부> 같이 황당하게 홀딱 깨는 만화가 더 재밌잖아요. 이런 식의 새로움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품행제로>와 <에스 다이어리>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박성훈(36) 감독은 자신의 첫 연출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썬데이서울>은 80여명의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이 선개런티를 한푼도 받지 않고 촬영에 들어간 것으로도 화제를 모은다. 이는 마당발을 자랑하는 박 감독의 힘이다. 한손에는 직접 쓴 기발한 시나리오를, 다른 한손에는 인간관계를 무기 삼아 들고 찾아온 박 감독의 제의를 뿌리치기는 누구도 쉽지 않았을 터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모두가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임하도록 하는 게 더 큰 목적이었어요. 선개런티 없이 개봉 뒤 흥행 수익을 나누기로 한 거죠.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투자자로 나선 셈이라고나 할까요?”


영화의 실제작비는 모든 촬영을 마친 지금까지 7억원 가량밖에 안들었다. “프로듀서로서 제작비를 계산해보니 처음에는 30억원 정도 나왔어요. 새로운 시도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거품을 빼다보니 이렇게까지 줄더라고요. 사실 스타시스템 등으로 한국영화 제작비가 너무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던 거죠.”

15년 이상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정소녀와 김추련의 캐스팅도 박 감독의 남다른 생각에서 나왔다. “흔히 배우가 없다고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좋은 배우가 많거든요. 예전에 날렸지만 지금은 잊혀진 배우 가운데 비중있는 조역을 잘 소화해낼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분들을 너무 홀대해온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정소녀와 김추련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열심인 후배들로부터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임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날 촬영분을 끝으로 크랭크업된 <썬데이서울>은 막바지 작업을 거쳐 오는 8월께 개봉된다.

진안/한겨레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필름마케팅비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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