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정말 계절이 두 개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 손님들로부터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듣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3월까지 눈이 내리던 맨하탄의 거리는 달이 바뀌자 마자 온통 탱크 탑을 입은 뉴요커들로 가득 차 버렸다. 그렇게 겨울이 끝나자마자 봄을 즐길 틈도 없이 여름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어두운 카페나 레스토랑이 아니라 남의 집 계단에서, 빌리지의 거리에서, 브라이언 파크에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아이스크림을 핥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공원의 잔디 위에는 광합성에 나선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 웃통 벗은 총각들로 북적거린다. 그러니까 나에겐 진정 최악의 시즌이 온 것이다. 도저히 이 따뜻한 빛을 놔두고 어두컴컴한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뫼르소는 저 태양 때문에 남의 생명줄을 끊었다고 했다지만, 뉴욕의 ‘이방인’은 저 태양 때문에 밥줄이 끊길 형편이다.
뉴욕의, 뉴욕에 의한, 뉴욕을 위한 영화제
그러나 때론 어둠의 유혹이 태양보다 더 강렬할 수도 있나 보다. 지난 19일부터 고대해 마지않던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막을 열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인터프리터>는 진정, 전혀 흥미롭지 않지만, 프로그램 책자에서 체크한 몇몇 작품들은 후회하기 전에 서둘러 예매를 해두었을 정도다. 이제 로버트 드 니로의 얼굴만 봐도 자동 연상되는 단어, 트라이베카(TriBeCa)는 ‘Triangle Below Canal’을 줄인 말로, 카날 거리를 중심으로 한 남쪽 트라이앵글 구역을 뜻한다. 한때 세계무역센터가 서 있던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서 2002년 처음 막을 연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9.11’ 이후 경제적으로나 사기면에서 침체된 로어 맨하탄 지역의 경기부흥과 지역민들의 사기증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제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인 작품들도 몇몇 눈에 띄지만 구색을 맞추는 정도이고 대부분 뉴욕의, 뉴욕에 의한, 뉴욕을 위한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종종 지역TV방송에서는 지난 해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이런 저런 토론회를 녹화해서 다시 보여주곤 했는데 어찌나 그 주제들이 ‘로컬’한지 그래, 이건 정말 당신들의 잔치로구나, 하는 괴리감이 들었을 정도다.
그나저나 이 도시에서 살다 보면 일년 달력이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영화제로만 채워도 꽉 찰 정도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도시를 가로질러도 얼마 걸리지 않고, 남에서 북으로 지하철로 30분이면 통과할 수 있는 이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일일이 체크하다 보면 숨이 찬다. 인종이나 지역별로 보면 이스라엘 영화제, 스웨덴 영화제, 아프리카 영화제, 인도 영화제, 유태인 영화제 등 세계지도를 그리고도 남을 정도고, 장르나 주제별로도 어린이 영화제, 레즈비언 게이영화제, 언더그라운드 영화제, 할렘 영화제 등 팔을 쭉 뻗어도 죄 담지 못할법한 다양한 영화제들을 쫓아갈 여유가 없을 정도다. 하긴, 지난 달 훌쩍 들렸던 유원지 코니 아일랜드에서 만난 ‘코니 아일랜드 영화제’의 현판도 여기선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쉽게 생각해서 ‘월미도 영화제’나 ‘경주 도투락월드 영화제’ 같은 이 영화제는 오는 9월 말부터 10월 초에 열릴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동네가 동네이다 보니 ‘필름’보다는 ‘페스티벌’에 방점을 찍은, 최대한 즐기자는 지역행사라고 한다. 그런데 어쩐지 이런 영화제라면 그 수많은 영화제들 중에서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제에서 <2046>을 볼 수는 없겠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기막힌 영화를 만날 우연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의 부천 영화제
사실 나에게 이런 우연을 즐거운 만남으로 성사시켜주었던 영화제가 바로 부천 영화제였다. 그리고 영화기자라는 직업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던 영화제이기도 했다. 죽은 시체를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활어처럼 펄떡펄떡 숨을 쉬는 영화들이 가득한 그 싱싱한 차림표만 보아도 늘 배가 불렀다. 그래서 올해 초, 부천영화제가 겪는 고초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도대체 시청에 앉아 계신 분들의 머리 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참 답답하고 한심했다. <미래소년 코난>의 삭막한 미래도시 같았던 그 콘크리트 덩어리의 도시에 혈색을 돌게 만들었던 영화제를 그런 식으로 죽인다는 건, 마치 스스로 대동맥을 긋는 행위처럼 느껴졌을 정도다.
하나의 영화제가 진짜 자기 색을 찾아가는 데는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시간과 시행착오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트라이베카 영화제 역시 긍정적인 시선만이 있는 건 아니다. 로버트 드 니로는 스스로 광고모델로 나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거대한 스폰서의 지원사격을 받는 가운데 영화제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지난 해 영화제의 경제적인 성공으로 올해 4회를 맞는 이 영화제가 규모면에서 성장한 것이 사실이고 그만큼 초반의 기치가 흐려진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몇몇 씨네마테크에서 그의 카드 광고가 나올 때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모든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한때 로버트 레드포드의 선댄스 영화제가 그러했듯,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그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젊은 필름메이커들의 든든한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 사이에 파묻혀 장국영의 맘보 춤에 어깨를 들썩이고 싶다.
어쨌든 충실히 관객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나는 그 영화제 덕분에 <역도산>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궁금했던 마이클 윈터바텀의 <나인 송즈>를 들을 수 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실 모든 영화제가 칸이 될 필요도, 베니스가 될 수도 없다. 오히려 그런 ‘황새’들을 쫓아가려고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유히 짧은 걸음으로 즐겁게 도약하는 영화제들이 나는 좋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순간 정말 가고 싶은 영화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씨네21> 10주년 영화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았던 그 충실하고 현명한 독자들, 그들 사이에 파묻혀 장국영의 맘보 춤에 어깨를 들썩이고 싶다. 뉴욕이 아니라 ‘한국 필름포럼’ 에 앉아 100번도 더 보았을 송강호의 “배배배배신이야 배반형…”을 당신들과 합창하고 싶다. 때론 영화관람은 어떤 영화를 보느냐 보다 누구와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나저나 여기 저기서 넘쳐나는 축하를 받고 있을 것이 분명한 10살배기 <씨네21>, 당신은 멀리서 보내는 내 작은 인사를 들을 수나 있을까요?. 정말로, 정말로, 생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