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원장이 되고 세번째 영화제다. 4회와 5회 영화제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이젠 영화제 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 전략도 세울 수 있고, 전주 시민들의 마음도 알 것 같고. 이전까진 개별 프로그램에 신경을 써서 한국에선 처음이었던 쿠바영화 특별전도 했지만, 제대로 홍보가 안돼서, 올해는 홍보비를 두배 이상 늘렸다. 시민들 또한 영화제가 매니아 중심이고 시민을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올해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궁전을 7편에서 15편으로 늘렸다. 그 섹션이 예매도 잘 되고 있다. 시민에게 다가서려 했던 마음에 답을 얻은 것 같다.
-시민과 가까워지려 했다고 해도 전체 프로그램엔 큰 변화가 없는 듯한데.
=그렇다. 일부에선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프로그램은 거의 그대로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전주영화제는 다른 지역에서 온 영화 매니아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다. 학생들도 많고. 올해도 22개 대학에서 1천명 이상의 학생이 전주영화제에 올 것이다. 마그렙 특별전이나 북한영화처럼 전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 전략을 세우는게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가.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제작자의 간섭없이 감독의 의지에 따라 만들고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디지털 영화는 일, 이십년 뒤에 필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주목받는 매체다. 그러므로 전주영화제의 길은 여전히 디지털과 대안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인 목표는 디지털 영화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동경국제영화제가 몰락했던 것처럼 축제만 하고 끝나선 단명하기 때문이다. 올해 국비와 시비를 투자받아서 디지털영화 후반작업 시설을 세울 계획이다. 아시아 감독들을 만나봤더니 후반작업 지원에 대한 욕구가 절실하더라. 올해 하반기에 디지털 영화들을 검토해서 후반작업 지원작으로 선정한 다음 내년 영화제에서 상영할 것 같다. 지금 부지 2만평을 매입해둔 상태다. 실내 세트와 오픈세트도 세우고, 디지털 영화를 사고파는 마켓기능까지 활성화하려고 한다.
-북한영화 세편을 상영한다. 프로그램을 발표한 기자회견 이후 추가된 특별상영인데,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는가.
=2년 전에 북한영화 상영을 추진했지만 사스때문에 무산됐다. 북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북한이 사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어떻게 될지 몰라 마지막까지 발표를 늦추었다. 북한영화는 잊혀진 한국영화를 발굴한다는 의미에서 상영하게 됐다. 1950년대부터 홍콩에 흘러들어간 한국영화 네가필름이 북한에 상당수 있다고 들었다. 그중엔 50년대에 전주에서 찍은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이라는 영화도 있다. 그 영화를 전주에서 상영하면 의미있지 않겠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 남·북한 사이의 영화교류를 시작하고 싶다. 영화도 재미있다. <피묻은 약패>는 작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우연히도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독도를 지키려는 일가족의 이야기고, <어서 오세요>는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다.
-전주영화제는 영화제의 노하우를 축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점때문에 작년 영화제가 끝나고 구조를 조정했다. 서로 자신의 역할을 키우려고만 하는 횡적 구조에서 종적 구조로 개편한 것이다. 내가 5회 영화제를 치르고 났더니 4회와 별로 달라진 점이 없더라. 10회 영화제를 바라보면서 수술을 해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한 일이었다.
-상영관이 대부분 메가박스로 집중되고 이벤트도 영화의 거리에 모여있다. 그래서인지 예년보다 축제다운 느낌이 난다.
=영화의 거리는 전주에선 죽은 도시처럼 여겨진다. 그 거리를 살리자는 의미에서 여러가지 행사를 계획했다. 빛의 축제인 루미나리에도 하는데, 사람은 없고 불빛만 반짝여선 안 되지 않겠는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그냥 떠나버리는 대신 축제도 보고 음악도 즐길 수 있도록 날마다 콘서트를 준비했다. 전주는 조용하고 편안한 도시다. 이 도시를 찾은 관객도 편안하게 영화를 즐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