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세상의 중심을 향해 쏴라, <댄서의 순정>의 배우 박건형
2005-04-28
글 : 박혜명
사진 : 이혜정

훤칠한 키에 시원스런 인사를 건네는 배우 박건형(28)은 요즘 일주일 넘게 홍보 스케줄을 해치우고 있는 중이다.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에게 춤과 사랑을 가르치는 전직 스포츠댄스 선수 영새 역을 맡아 두 번째 영화를 찍은 그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2003)로 이미 따끈한 스타덤을 치른 배우이기도 하다.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답게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이 얼핏 인터뷰에 꽤 익숙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 제대후 2001년 뮤지컬 <더 플레이>로 기성무대에 데뷔하면서 순조롭게 흘러온 시간이 짧은 만큼, 박건형은 차가웠던 시절의 느낌을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고 섬세하게 기억한다. 재수시절과 군 시절. 분명한 꿈도 없이 여러 대학 연영과에 지원했다 줄줄이 낙방한 뒤 스스로가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느껴졌던 시간. 꼭 가리라 마음먹은 서울예대 캠퍼스 뒷마당을 찾아가 혼자 대사 연습을 하며 “난 대학 떨어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연기학원비를 버느라 서빙, 공사현장 인부, 화장품 판매 등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 하는 동안 막연함만 있던 마음속에 절실함이 들어섰다. 부대 탄약고에서 근무 서고, 내무실 방바닥을 닦으면서는 TV에 출연하는 서울예대 동기들 모습을 봤다. “아,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꽉꽉 누르며 또 생각했다. 너희들은 나보다 먼저 출발했고, 난 지금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거다. 계속 당길 거다. 끊어지기 전까지. 그러다 놓으면, 너희들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야. 이 생각을 하고, 스스로가 대견해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런 느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해요.” 박건형은, 자신감과 진지함과 오기로 만들어진 눈빛을 갖고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생각이라는 걸 생각할 수조차 없는 멀미나는 순간”도 많았다는 그는, 그 많은 생각과 기억들을 자기 암시로 바꿔 스스로를 다져온 사람이다. 몇 걸음만 걸어가면 되는 드라마 엑스트라 때 나름대로 설정을 만들어 연기를 했더니 PD가 “야, 거기. 너 왜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 그냥 빨리빨리 걸어서 나가!”라고 꾸짖고는 스탭에게 “사람 바꿔”라고 해서 잘렸단다. 그런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42번가> 공연에서 암전시 소품을 옮기는 일을 하며 “난 암전 배우야”라고 주문을 걸지도 못했을 것이다.

뮤지컬이든 영화든 장르에 상관없이 평생 배우를 할 거라고 말한 박건형은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소개되고, ‘제2의 조승우를 꿈꾸며’ 같은 기사에 꼭 이름이 끼고, ‘이제 난 스타에요’ 류의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 싫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저항감의 표시였다. “모험하는 것도 좋아요. 길이 아닌 곳엔 가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그 말에 반박도 해요. 안 가봤으면서. 길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여행할 때도 흔히 명소라고 하는 데는 잘 안 가요. 내가 가는 곳이 명소고, 내가 의미를 두는 곳이 아지트가 되는 거죠.” 박건형은 언젠가 세상의 중심에서 자신의 이름을 외칠 그날을 꿈꾸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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