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양일/ 일본/ 2004년/ 100분
옆구리에 새 날개 모양의 얼룩이 있어 ‘퀼’이라고 불리게 된 리트리버는 맹인안내견 훈련센터의 다른 개들에 비해 반응이 늦어 열등생으로 남지만, ‘기다려’라는 등의 지시는 철썩같이 따르는 비상한 면모가 있었다. 그런 퀼의 첫번째 파트너는 “개에게 끌려다니느니 차라리 누워있겠다”고 우기는 고집불통의 중년 맹인 미츠루. 그간 지팡이에 기대어 생활했던 미츠루와 맹인 안내의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퀼은 처음엔 손발이 맞지 않지만, 조금씩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한다. 함께 걸음을 내딛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껴질 무렵,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이별이 찾아온다.
국내에도 <내 사랑 토람이>라는 특집극으로 익숙해진 맹인 안내견의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지난해 한차례 선풍을 일으켰다. <막스의 산> <개 달리다> 등 무표정한 하드보일드로 잘 알려진 최양일 감독의 <퀼>이 바로 그 작품. ‘최양일판 디즈니 영화’라고 불리운 <퀼>은 “능동적인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변을 들어보면, 의외의 선택인 것만 같지는 않다. 의심이 많고 성질이 괴팍해 다른 누구의 도움을 구하거나 바라지 않았던 시각 장애자와 역시 자기 세계가 뚜렷해서 맹인 안내견으로는 함량 미달 판정을 받았던 말썽장이 리트리버가 ‘파트너’로 맺어지는 것은 서로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부터 노쇠해지기까지 퀼의 생애를 따라잡은 이 영화는 퀼의 귀여운 판타지와 감정의 변화까지 아우르며, 소소한 재미와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지난해 일본 극장가에서 30억엔의 수익을 올렸고, 현재 미국에서 리메이크가 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