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설적 포르노<목구멍 깊숙이>에 관한 다큐 <인사이드 딥 스로트>
2005-04-29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사회적 억압이 이 포르노를 대박으로 만들었다
섹스와 유머를 접목한 <목구멍 깊숙이>는 포르노라는 한계를 넘어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미디어 이벤트로 부각된다. 여기에는 닉슨 정권의 무자비한 검열제도가 큰 몫을 했다. 인사이드 딥 스로트>을 보면 당시 검열제도를 반대하던 잭 니콜슨과 워렌 비티의 모습은 물론, 고어 비달과 존 워터스,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 <허슬러>의 래리 플린트, 웨스 크레이븐 등의 인터뷰와 자료 화면 등과 함께 당시 센세이션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1972년작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는 뉴욕에서 착안돼, 뉴욕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영화다. 지난 2월 뉴욕에서 개봉돼 반향을 일으켰던 <인사이드 딥 스로트>는 할리우드의 유력 프로듀서 브라이언 그레이저(<뷰티풀 마인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포르노 역사상 가장 유명하며, 600만달러라는 최고의 수익을 올린 <목구멍 깊숙이>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문화적인 파장,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작은 지극히 단순했다. 뉴욕 퀸즈에서 미장원을 운영하던 제라드 다미아노는 단골 손님들의 대화 중 대부분의 화제가 성생활이라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는 커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지역사회 서비스 차원(?)’의 포르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무명이던 린다 러브레스의 놀라운 펠라티오 능력을 어떻게 반영할까를 고심(?)하던 다미아노는 그녀를 오르가즘을 못 느끼는 여자로 출연시킨다. 진찰하던 의사가 그녀의 클리토리스가 목구멍 깊숙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후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내용. 제목에도 약간은 장난기가 어려있는 <목구멍 깊숙이>는 2,500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마이애미에서 제작됐고, 1972년 뉴욕의 심장으로 불리는 타임스스퀘어의 월드 시어터에서 개봉됐다.

VCR 없던 시절, 이 영화는 다른 포르노와 비슷한 루트를 통해 마피아가 운영하는 삼류극장에서 개봉됐다(당시 포르노 극장은 매춘업과 마약판매로 얻은 수익을 돈세탁하는 곳으로 많이 이용됐다). 그러나 모든 것은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 때문에 바뀌어 버린다. <뉴욕타임스>가 <목구멍 깊숙이>를 “세련된 포르노(porno-chic)”로 평하며, 예찬론을 펼친 것이다. 이 극장을 재키 오나시스, 트루먼 커포티, 마이크 니콜스 등 유명인들이 줄지어 찾자, 뉴요커의 발길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섹스와 유머를 접목시켜 남녀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고, 봐서는 안될 영화를 함께 본다는 장난기 어린 즐거움 때문에 이 영화는 포르노라는 한계를 넘어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고, 미디어 이벤트로 부각된다. <인사이드 딥 스로트>에서는 당시 검열제도를 반대하던 잭 니콜슨과 워렌 비티의 모습은 물론, 고어 비달과 존 워터스,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 <허슬러>의 래리 플린트, 웨스 크레이븐 등의 인터뷰와 자료 화면 등과 함께 당시 센세이션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영화는 무자비한 검열제도 때문에 명성을 얻게되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목구멍 깊숙이>가 명성(또는 악명)을 높이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당연히 ‘포르노와의 전쟁’을 선포한 닉슨 정권의 무자비한 검열제도 때문이었다. ‘포르노가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내용의 비과학적인 리포트까지 이용한 닉슨 정권은 경찰을 동원해 극장을 폐쇄하고, 음란물로 규정해 법정 소송까지 끌고 갔다. 이같은 억압은 반작용을 창출하기 마련. 바바리 코트를 입고도 극장을 몇 바퀴나 돈 후에야 겨우 숨어 들어갈 용기가 나던 포르노 극장에 하루 아침에 유명인들과 호기심 어린 남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인사이드 딥 스로트>의 당시 뉴스 자료 화면들을 보면 줄을 서서 기다리던 관객들은 뉴스 인터뷰에도 즐겁게 응하고, 종종 포르노를 볼 권리와 자유를 외치는 할머니도 발견할 수 있다.

다미아노 감독은 이 작품에서 시인한다. “<목구멍 깊숙이>는 내가 만들긴 했지만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검열 제도의 억압이 없었다면 그렇게 큰 이슈가 되지도, 유행을 타지도 못했을 것이다”. 닉슨 정권의 노력으로 <목구멍 깊숙이>는 미국 23개 주에서 상영금지됐다. 하지만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또 당시 사건 정보를 기자들에게 알린 익명의 제보인을 ‘딥 스로트'로 부르게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 따르면 다미아노 감독은 <목구멍 깊숙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를 댄 콜롬보 마피아 패밀리와 포르노 극장을 운영하던 다른 마피아의 협박(?)에 밀려 한푼도 이윤을 챙기지 못했다. 이 작품으로 유명해진 러브레스는 잡지 모델로도 나오고 <린다 러브레스를 대통령으로> 등의 소프트코어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80년대 여성운동의 핀업걸로 대두된 그녀는 당시 남편 척 트레이노어가 최면을 걸어 포르노에 나왔고, 계속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 때마다 평범한 여자로 생활하기 힘들어지자 50세가 넘어서도 도색잡지 모델로 등장하는 등 포르노계에서 전전하다 2002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인사이드 딥 스로트>를 보면서 30년 전 닉슨 정권이나 현 부시 정권의 검열기준과 잣대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지금 뉴욕에서는 대형 체인점과 극장들에 밀려 변두리로 쫓겨난 포르노 DVD 대여점을 그나마도 없애자는 분위기다. 뉴욕시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이 이슈로 법정 소송을 했지만 기각당했다. 하지만 영화는 물론 TV, 라디오 방송까지 음란한 내용을 검열, 규제하는 규정이 강화되고 있다. 현대판 미디어 마녀사냥은 방송사에게 엄청난 금액의 벌금을 물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방송인 개개인에게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어찌 보면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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