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 쾌락과 좌절이 맞물린 카니발
2005-04-29
글 : 홍성남 (평론가)
<태풍 클럽>만큼 청춘의 에너지에 담긴 활력과 광포함과 공백을 함께 담은 예를 찾기는 힘들며, <이사>처럼 통과의례의 불안한 길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인물과 함께 동행케 하는 영화도 드물다. 소마이는 환멸, 공포, 열정이 혼재된 축제를 스크린 위에 그려내고는 우리로 하여금 소년기, 그것의 미스테리와 생생하게 대면하도록 해주었다.

그는 소년기, 그것의 미스테리와 생생하게 대면하도록 해주었다.
<뉴욕 타임즈>의 영화평론가였던 빈센트 캔비는 <마루사의 여인>(1987)의 리뷰에서 그 영화를 만든 이타미 주조 감독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타미씨가 오늘날의 영화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자유분방한 감수성을 가진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지고 영화 제작의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가 극심한 변화와 맞닥뜨려야 했던 80년대라는 일종의 과도기에 일본영화가 배출한 영화감독들 가운데 흔히 첫 손에 꼽히는 이가 이타미 주조였다. 그는 앞의 예에서 보듯 특히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엄정한 평자들에게 그의 영화적 재능(하스미 시게히코)이나 독창성(요모타 이누히코)은 종종 의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타미 외에 80년대에 등장한 또 다른 재능 있는 영화감독으로는 <가족 게임>(1983)의 모리타 요시미츠를 들 수 있을 것인데, 아쉽게도 그가 그려낸 필모그래피는 들쭉날쭉한 모양새를 가진 것이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 바로 소마이 신지이다. 이타미보다 영화적 재능도 뛰어났고 모리타보다 고른 수준의 행보를 유지했으면서도 일본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는 지금에라도 탐사할 가치가 있는 나름의 견고한 세계를 구축한 인물인 것이다.

소마이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자신의 이름이 붙은 독특한 영화적 스타일이다. 데뷔작 <꿈꾸는 열 다섯>(1980)에서부터 마지막 영화가 된 <바람꽃>(2000)에 이르는 열 세 편으로 채워진 필모그래피의 여정 안에는, 비록 그 사이에 미묘한 변화를 겪긴 했을지라도, 일종의 상수로서 이른바 ‘소마이 스타일’이라 부를만한 것이 관통했었던 것이다. 그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훨씬 앞 세대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와의 비교를 초래하는 방법론, 즉 인물을 비교적 멀리서 포착하면서 되도록 호흡을 끊지 않고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사실 소마이의 이런 스타일은 종종 그 과감한 자체적인 원칙에의 충실함이 설계 원리 자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인물과 거리를 두면서도 그를 시각적으로 방기하지도 않는 소마이 영화의 시선이, 어떤 환경과 시간 속에 던져져 있는 인물 내부의 감정의 영역으로 인도하고 그 감정의 스펙터클함을 드러내주며 그것의 숨막힘을 구현할 때에, 한편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식의 비판은 그저 꼬투리잡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강둑을 따라 펼쳐지는 야쿠자들과 아이들의 추격을 담은 <숀벤 라이더>(1983)의 긴 시퀀스는 그 훌륭한 예가 되어준다.

과격함과 유려함의 중도쯤에 놓여 있는 소마이의 카메라가 특히 빛을 발한 것은 소년 시절의 헐떡거리는 호흡을 포착하고 그 시절의 종작없이 방황하는 발걸음을 따라갈 때였다. 소마이를 두고 영화사상 소년기를 가장 잘 파악한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건 그가 그 시절을 거쳐가는 이들의 내부에는 분출을 갈망하는, 거의 폭력적이라고 할 감정들이 있음을 그 어떤 영화감독보다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무엇보다도 ‘영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낼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태풍이 치는 밤에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아이들을 그린 <태풍 클럽>(1981)만큼 청춘의 에너지에 담긴 활력과 광포함과 공백을 함께 담은 예를 찾기는 힘들 것이고, 주인공 소녀가 길을 잃고 헤매는 종반 30분이 특히 인상적인 <이사>(1993)에서처럼 통과의례의 불안한 길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인물과 함께 동행케 하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렇듯, 소마이는 환멸, 공포, 열정이 혼재된 축제를 스크린 위에 그려내고는 영화를 보는 우리로 하여금 소년기, 그것의 미스테리와 생생하게 대면하도록 해주었다.

소년들이 아니라 성인들이 주인공인 영화들, 예컨대, <러브 호텔>(1985)이나 <빛나는 여자>(1987)에도 그 같은 카니발이 모습을 드러내서 그 영화들을 흥미롭게 해주는 걸 보면, 쾌락과 좌절이 맞물린 카니발이란 소마이의 세계에서 꽤나 중요한 요소였던 듯 하다. 이건, 그 요소가 빠진 소마이의 마지막 영화들이 무언가 활력이 사라진 인상을 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다. 그의 마지막 두 영화, <아, 봄>(1998)과 <바람꽃>(2000)은 확실히 소마이 세계에서 단절의 지점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전의 영화들과 비교해 성인들의 문제를 다룬 이 영화들은 너무 은근해서 에너지란 것이 감지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만든 이의 지친 기색조차 느끼게 만든다. 아마도 소마이 자신은 차분한 성찰의 자세를 취하며 다른 길로의 진입을 모색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진 못했다. 때문에 소마이의 비교적 이른 죽음으로 끝나버린 그의 세계는 안타깝게도 미결된 세계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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