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맛, 익숙한 맛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가 구가하는 이미지에 큰 변주는 없지만 그만큼 독보적인 장르로 정착할 수 있었다.” 마동석을 둘러싼 다양한 분석에는 ‘아는 맛’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돌이켜보면 아는 맛이 장점으로 꼽히는 건 묘한 일이다. 콘텐츠 시장에서 친숙함과 익숙함은 자칫하면 지루함과 예측 가능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대중은 여전히 그에게 ‘이미 경험한’ 이미지를 요구한다. 뭉툭한 주먹 하나로 빌런을 시원하게 무너뜨리고, 큰일을 치른 뒤에도 생색 없이 자리를 떠나버리는. 세상에 멸종한 줄 알았던 정의감과 의협심을 박박 긁어모아 발휘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시대성이 반영된 욕망을 투영한다. 그렇다면 마동석은 콘텐츠로서 어떤 소구력을 지니고 있을까. 빠르게 사랑받고 빠르게 사라지는, 생애주기가 짧아진 콘텐츠 산업 안에서 그의 셀링포인트를 분석하기 위해 11명의 마케터에게 질문을 건넸다. 콘텐츠·영화배급·출판·IT·의류·F&B·완구 등 총 7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마동석의 SWOT을 해체했다.
전형적이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남성성
마동석 하면 주먹, 주먹 하면 마동석. 마동석을 떠올릴 때 암묵적인 공식처럼 혈투와 주먹다짐을 연상하기란 일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화 <이웃사람>에서 연쇄살인범을 두려운 대상이 아닌 우스운 사람으로 격하한 것은 마동석의 심판이었고, <부산행>의 좀비들을 가볍게 처치한 것도 <범죄도시> 시리즈의 통쾌함을 완성한 것도 모두 마동석의 강력한 펀치였다. 그가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온 이미지는 공통적으로 전투적이고 호전적이다. 그런 그에게 대중들이 붙여준 별명은 ‘마블리’다. ‘마동석+러블리’의 합성어인 마블리는 마요미(마동석 귀요미), 마쁜이(마동석 이쁜이)로 대체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2016년 뷰티 브랜드 에뛰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울룩불룩한 피지컬과 상반되는 분홍빛 앞치마. 많은 이들이 흔쾌히 웃으며 광고를 반겼고 온오프라인의 화제성도 높았다. 출판 마케터 A씨는 “마동석은 자신이 지닌 남성성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배우로서 “따뜻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 유연한 태도”를 장점으로 꼽았다. 다시 말해 “성별 고정관념에 얽히지 않는 여유와 함께 무엇을 해도 우스워지지 않고”(의류 브랜드 마케터 H씨), “우락부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가부장적이거나 거칠지 않은 모습”(제품 마케터 S씨)이 대외적인 신뢰도와 친근함을 높인다. 이어 의류 브랜드 마케터 H씨는 “딸에게 <모아나> 노래를 불러주는 드웨인 존슨의 영상이 화제가 됐던 것도 ‘진정한 남성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론이 커지면서부터였다. 건강한 체격을 남성성의 과시수단으로 쓰지 않는 점“이 안전한 모델로 돋보이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거대한 몸으로 작은 새끼 고양이를 쓰다듬는 사진이 온라인상의 밈이 되거나 <부산행>에서 아내 성경(정유미)에게 꼼짝 못하는 장면들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단초들이 되었다. 콘텐츠 마케터 G씨는 마케터들이 광고 모델로 마동석을 선호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마동석의 키워드를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강함과 무해함. 그가 소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까지도 마동석의 이미지처럼 일반인이 겪는 불편과 문제를 통쾌하게 해결해줄 것 같은 느낌을 전한다.”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아!
중국 오픈마켓 타오바오가 처음 국내에 알려졌을 때 판매자들과 수월하게 이야기 나누기 위한 꿀팁이 유행처럼 돌아다녔다. 바로 계정 프로필을 마동석 사진으로 설정하는 것. 사진 속 그의 표정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주먹이나 망치가 잘 보이면 보일수록 프로필 용도로 더 쉽게 선택받았다. 다시 말해 대중은 그에게 안전과 수호를 위탁했다. 그의 다부진 외형이 낯설고 두려운 해외 거래로부터 안정감을 담보해줄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IT·콘텐츠 마케터 A씨는 “마동석은 ‘우리 편’이라는 감성을 자극”한다는 현상의 핵심을 짚었다. “정의롭고 용감하지만 동시에 거칠고 유머러스한” 다각도의 매력은 물론, “약자에게는 자상하고 든든한 태도”에 안심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마동석이 콘텐츠 소재로서 쌓아온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정의 구현과 불의 타파라는 대리 만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리만족은 은연중 기대감으로 확장된다. 마동석이 빌런을 제대로 무너뜨리기를, 전 시리즈보다 더 강한 방법으로 악을 소탕해주기를, 약자의 편에 서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을 제대로 실현해주기를. 기대에서 비롯한 대중의 ‘아는 맛’은 마동석표 프랜차이즈 <범죄도시> 시리즈를 딛고 더 구체적으로 견고해졌다. 고정된 설렘은 마동석을 하나의 장르로 구축하기 충분했다. “마동석 배우는 할리우드 배우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뒤따른다. 사실 그가 출연한 마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진 않았다. 보통 영화가 잘되지 않으면 그때 갖고 있던 이미지가 희석되기 마련인데 마동석은 여전히 할리우드 배우 이미지, 히어로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동석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장면들이 있다. 마동석의 정체성과 대외 이미지가 국내 대중에게 얼마나 견고한지, 그를 향한 기대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영화배급사 마케터 S씨)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물론 마동석이 지닌 한계도 제기됐다. “많은 사람들이 홍길동과 임꺽정 같은 히어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동석을 찾는다”고 진단한 IT·콘텐츠 마케터 A씨는 “현실 세계에 쌓인 박탈감과 열등감, 무력감을 ‘참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분출”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잘못을 저지른 누구든 합법적으로 때려도 되는 세계관”(출판 마케터 A씨)에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과 그를 발판 삼은 농담들이 대중에게 반복돼 노출될 때 그 허들이 낮아지기 때문”(F&B IMC 마케터 Y씨)이다. “예민한 사회에서 마동석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는 어디 가서도 지지 않는 카타르시스”(제품 마케터 S씨)를 주지만 힘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에서는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활용한 변주가 필요한 시점”(IT·콘텐츠 마케터 A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