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2일 개봉하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활>이 개봉 전 기자 시사회나 일반 시사회없이 개봉관으로 직행한다. 주목받는 감독의 기대작이 시사회를 하지 않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활>은 5월11일 개막하는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오프닝 작으로 선정된 영화다. 시사회뿐 아니라 포스터 한 장을 제외하고는 스틸사진이나 비디오 클립 등 영화를 소개하는 자료들을 일체 공개하지 않겠다는 게 김 감독의 계획이다. 최근 공개된 <활>의 포스터는 푸른 바다에 활이 배처럼 떠있는 이미지 뿐이며 ‘60세의 노인과 17세 소녀의 기묘한 동거’ 정도가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김 감독은 <활>과 관련한 인터뷰도 전혀 하고 있지 않으며 홍보사인 시네마 제니스는 “개봉 전에 많은 정보를 주면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완성된 작품으로 관객과 직접 만나겠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직접 배급에 나서 서울 강남의 멀티플렉스 시너스G에서 단독개봉을 확정했으며 시차를 두고 씨너스 대전, 대구 한일극장, 광주 무등극장 등으로 점차 개봉관을 늘여가기로 했다.
여러 극장을 잡아 동시 개봉하는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고 나아가 시사회까지 포기한 김 감독의 파격적 결정에서 비평과 흥행, 배급관행 등 한국 영화 풍토 전반을 불편해하는 그의 심기가 읽힌다. 해외에선 한국의 대표 감독으로 꼽히기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정작 국내에서 받는 대접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사마리아>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마리아>가 국내 시장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내서 저예산 영화도 극장에서 온당한 대접을 받으며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던 감독의 바람과 달리 영화는 시장에서 참패를 했고, 그 실패가 <빈 집>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상업성에서 자유로운 작가 감독이라고 해도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두 차례의 흥행실패를 겪은 뒤 김 감독은 새 영화 <활>의 국내 개봉을 아예 포기할 생각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스태프들의 간곡한 권유로 3월 말에야 개봉을 결심한 김 감독은 기존의 배급과 흥행논리에서 벗어난 자신의 방식으로 직접 배급에 나선 것이다.
자신의 손을 떠났을 때 마케팅에서 작품 자체를 떠나 오로지 흥행논리로 영화가 포장되거나, 시사회 뒤에 쏟아질 영화평들이 작품을 오해하는 일을 우려하는 감독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김기덕만큼 평단과 말문을 트는 데에 시간이 걸린 감독도 없다. 그래서 개봉 뒤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보고 기사를 써야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만, 함구와 비공개로 ‘오해’를 피해가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 생기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그의 새 방식이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나는 결과를 낳기를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