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성공이란 결혼이
두 집안의 ‘화학결합’ 임을
상견례를 치르면 알게되지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사랑만이 존재한다. ‘성공한 사랑’ 과 ‘실패한 사랑’. 멜로 영화라는 장르가 주로 사랑에 실패한 연인들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면, 로맨틱코미디에는 ‘성공한 사랑’ 을 거머쥔 연인들이 등장한다. 로맨틱코미디 속 주인공들은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 부딪치고 아옹다옹 정 들다가 엎치락뒤치락 오해의 과정을 거쳐, 종국에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뜨겁게 포옹하면서 행복한 피날레를 맞이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가? 연인들의 고민은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 좀 이상한 문제로 딜레마에 빠진 남자가 있다. <미트 페어런츠2>의 그렉은 사랑 때문이라면 별로 고뇌할 필요가 없는 입장이다. 애인과의 관계는 아주 좋으며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제 3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년 동안 사귀어온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딱 하나, 결혼뿐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사랑에 성공했다는 말이 곧 결혼에 성공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사회에서, 완전한 사랑을 이루려면 누구나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 은 정말 친밀한 이웃사촌인가? 선량한 연인 그렉의 수난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연애는, 특정 상대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어 서로 그리워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언제나 일대일의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두 연인은 이 세상에 오직 단 둘만이 존재하는 듯 자신들만의 내밀하고 배타적인 성을 쌓아 그 안에서 기꺼이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렇듯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에 속해있는 (것처럼 보이는) 로맨스가, 결혼이라는 제도와 도킹하게 되면 순식간에 밀실에서 광장으로 질질 끌려나오게 되고 마는 것이다. 신랑신부가 사고무친의 고아가 아니라면, 그들 앞에는 ‘남들처럼 무난하고 평화로운’ 결혼식을 위해 넘어야 할 수많은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바, 그 첫 번째 관문이 양가 상견례라는 기묘한 의식이다. 너무나 자유롭다 못해 헐렁한 생활방식을 가진 친부모와, 깐깐하고 고집스러우며 의심까지 많은 예비 장인. 그들을 한 자리에 모여 앉히는 상상만으로도 그렉은 안절부절못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결혼인데, 정작 그는 주체가 아니라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조율사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이 어처구니없다. 그 기막힌 모습 위로 ‘말 많고 탈 많은 결혼준비과정을 한 번 더 겪느니 차라리 다 때려 치고 만다’ 고 치를 떨던 친구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상견례를 무사히 치러냈다는 것만으로도, 결혼에 골인한 모든 커플은 위대하다.
덧붙이는 말 : 한국에서 딸 가진 부모가 예비 사돈에게 (그렉의 장인처럼)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다 했다면, 십중팔구 그 결혼 깨졌을 거다. 그런 점에서 <미트페어런츠2>는 현실성을 가장하기는 했지만, 2005년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차라리 SF영화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