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토우>는 이상한 인디영화다. 아버지를 살해한 삼촌에게 쫓기는 형제를 따라가던 관객들은 이 영화가 제법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중반이후 영화는 딴청을 피우기 시작한다. 소년들은 길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강에서 수영을 하고, 사랑에 빠진다. 카메라는 추격전 따위는 잊어버린 채, 소년들과 남부의 습기찬 ’순간’들을 마크 트웨인과 찰스 로튼과 B급 영화의 감수성으로 프레임에 담아낸다. <언더토우>를 만든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은 한국과도 (아주 약간의) 인연이 있다. 그는 두 번째 작품인 <올 더 리얼 걸스>로 2003년 전주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광주영화제에도 게스트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올해 인디비전 심사위원 자격으로 전주를 방문한 그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오늘은 <나, 클라우디아>를 봤는데 정말 굉장한 작품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오니 새로운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어 좋다”며 남부 억양으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나.
=아주 어릴때부터 수퍼A카메라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위대한 작가가 될 떡잎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독이란 재능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지휘하는 사람이니까 꼭 위대한 작가의 소질을 지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이 된 것이다.(웃음)
-<언더토우>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였나.
=10여년전 미주리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더해서 픽션화한 것이다. 특히 주인공인 크리스에는 내 자신이 상당히 투영되어 있다.
-<언더토우>는 스릴러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버린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다. 장르영화와 비장르영화를 하나의 작품에 녹이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절반은 스크립트를 충실히 따라서 연출했고, 나머지 절반은 매우 거칠게 자유로운 스타일로 영화를 찍었다.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 떠오르더라. 사람들은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력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맞다. 언급한 것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 외에는 70년대 미국 B급 영화들에서 차용한 부분들이 많다. 나는 트래쉬 무비 중독자(Trash Moive Junkie)다.(웃음)
-그렇다면 타란티노의 영향은? 혹시 당신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한적이 있나?
=(웃음). 어릴때 비디오 가게나 극장에서 일한적이 있다. 타란티노라. 그의 영화중에서는 <재키 브라운>이 제일 나은것 같고.(웃음). 말하자면, 나는 ’그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빌리 엘리엇>의 영국배우 제이미 벨을 완전한 남부소년으로 만들어 놓았다. 더모트 멀로니(<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처럼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배우들도 명연을 펼쳤고. 단역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배우같지가 않다. 어떻게 연기지도를 한것인가.
=수천명을 오디션했는데 제이미가 최고였다. 촬영중에 그는 내 레드넥(Redneck;미국남부 노동자계급)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액센트를 익히려고 굉장한 노력을 했다. 때때로 스크립트를 던져버리고, 그들에게 자유로운 연기를 하게했다.
-<언더토우>는 역류라는 뜻인데, 제목에 담긴 의미는 뭔가.
=원래 내가 붙이려했던 제목은 <Narrow Pilgrim>(궁핍한 순례자)나 <Monsters on the Cannyon>(계곡의 괴물들)이었다. <언더토우>는 오리지널 각본에 붙어있었던 제목이었고, 제작자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나는 <언더토우>라는 제목이 싫다.
-지금 미국에서 인디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90년대와는 달리 도통 볼만한 미국산 인디영화가 드문데.
=돈을 얻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90년대 존재했던 거대 스튜디오와 인디영화간의 커넥션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들이 저마다 인디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인디영화가 스튜디오를 거쳐서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는 곧 제대로 된 인디영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비평적인 성공을 거둔 당신같은 사람은 여러모로 행운아다.
=글쎄. 내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스튜디오를 위해 각본을 쓴다. 지금은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호러영화와 탐 크루즈가 제작하는 오토바이 영화의 각본을 쓰는 중이다. 거대자본에 삼켜졌다가 내뱉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다. 이렇게 일하면 스튜디오도 만족시켜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동시에, 스튜디오의 지나친 참견없이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