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월> A Thousand Months
2005-05-01
글 : 김유진

감독 파우지 벤사이디 /모로코 / 2003년 / 124분

모로코의 감독 파우지 벤사이디의 <천월>은 어린 베흐디를 중심으로, 그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의 일상과 미묘한 변화들을 담는다. 정부에 반발하는 데모를 한 죄로 감옥에 가있는 베흐디의 아빠는 보다 나은 삶의 변화를 추구했던 셈이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들에게 현실의 고민을 안겨주게 된다. 할아버지는 생활을 위해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구들을 하나씩 팔아가고, 엄마는 갑갑한 현실에 대한 방책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원한다. 그들은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일상은, 그리고 일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그들에게 점차 미묘한 변화를 불러온다.

의자에 교사의 권위를 부여하는 메흐디의 선생님, 사회 규범에 반발하는 멜리카 등도 이런 단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틈새에서 메흐디 역시 조용한 변화를 겪는다. 선생님의 의자를 소중하게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때로는 그 의자에 앉아 때로는 그 의자에 올라 그저 세상을 바라보던 메흐디는 이제 어른들의 말씀과 선생님의 지나친 총애와 이웃 누나의 죽음을 기억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이슬람 어린이들이 관례처럼 치르는 라마단 금식의 그 하루가 천 개월보다 더 가치있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금식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음식물을 씹다가 뱉어버린 메흐디처럼, 삶은 현재의 금지된 것,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게 된다. 그 속에서 적절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삶을 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미묘한 일상을 그대로 응시하기 때문에, 짠하지만 곡절은 없고, 미소는 짓게 하지만 폭소를 터트리긴 어렵다. 하지만 의자, TV 등에 대해 인물들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처럼 곳곳에 산재한 엉뚱한 유머들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그 풍경에서 삶의 페이소스를 뽑아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