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노센스> Innocence
2005-05-01
글 : 박은영

감독 뤼실 하지할릴러비치/ 프랑스, 영국, 벨기에, 일본/ 2004년/115분

한적한 숲 속에 흰 옷을 입은 소녀들이 살고 있다. 서로 다른 나이대의 소녀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발레 레슨을 받는데, 그들을 둘러싼 담 너머의 세상으로 나가는 건 금지돼 있다. 갓 들어온 막내는 맏언니격인 비앙카가 밤마다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그녀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돌아오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탈출을 시도하는 소녀들은 죽음을 맞거나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죽은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이 곳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영원히 이 곳에 갇혀 어린 소녀들의 시중을 들며 늙어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노센스>는 소녀의 성장(혹은 성장의 공포)에 관한 동화다. 성장이 이뤄지는 숲은 평화롭거나 안온하다기 보다는 <빌리지>의 숲이나 <도그빌>의 마을처럼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이 소녀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린 소녀들은 대개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나 몸을 눕히는 관에 실린 채 이 숲으로 인도되고, 숲에서 몇 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정확히는 초경 무렵) 다시 멀리로 떠나간다.

영화는 아동기와 청년기 사이, 소녀들이 겪음직한 희망과 불안의 감정, 순종과 반항의 의지가 충돌하는 성장기를 ‘순수의 시대’로 명명하고, 눅눅한 영상에 팽팽한 긴장을 실어 표현해냈다. 감독 뤼실 하지할릴러비치는 <아이 스탠드 얼론>의 제작과 편집을 맡는 등 가스파르 노에와 각별한 파트너십을 유지해 왔고, 이 작품 또한 그에게 헌정했다. 오프닝에 뜨는 엔딩 크레딧이나 시종일관 흐르는 음산한 공기와 불편한 소음은 가스파르 노에의 영화와 닮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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