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진성 감독의 <거칠마루> 2년간의 악전고투 제작기
2005-05-01
글 : 박은영
가난하지만 치열했다
인터넷으로 무술의 달인들을 만나고 장소 헌팅을 하고, 후배들이 모아준 3천5백만원으로 2주만에 촬영을 끝냈다. 후반작업은 함께 각본을 쓴 아내 변원미 작가의 수입에서 비용을 충당하며 2년이 더 걸렸고, 올 초 영화사에서 마케팅과 배급을 맡아 주기로 하면서 재촬영을 통해 거칠게 완성했던 <거칠마루>는 다른 ‘때깔’을 띠게 되었다.

4월30일 오후 3시경 메가박스 3관에서는 열띤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전설적인 고수를 찾아나서는 무술인들의 이야기 <거칠마루>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앉아, 김진성 감독에게 앞다퉈 질문을 던지고, 장태식 등 배우들이 팬서비스로 선보인 무술 시범에 환호를 보냈다. 지난 겨울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로, 촬영과 후반 작업 등을 보충해 업데이트한 <거칠마루>가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순간이다.

<거칠마루>는 인터넷 사이트 무림지존에서 최고의 고수로 통하던 거칠마루가 회원들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하자, 택견, 우슈, 복싱, 유도, 무에타이 등 저마다 주종목이 다른 여덟 명의 후보들이 거칠마루와 대련할 ‘더 원’을 선발하기 위해 토너먼트를 벌이는 과정을 경쾌하게 따라잡는다. “도복을 입고 있을 때만큼은 최고이고 싶은” 무술인들의 순수하고 풋풋한 열정이 와이어나 컴퓨터 그래픽을 빌지 않은 비전문 배우들의 생짜 액션에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결과물 만큼이나 경이로운 것이 <거칠마루>의 제작 과정이다. 김진성 감독은 <인간극장>에서 무술의 고수를 찾아다니는 장태식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고, “요즘 세상에도 저런 사람이 있나” 의아해져서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테크놀로지가 앞서가는 세상에서 몸으로 부딪히기를 고수하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이들은 생활인으로서는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런 데서 오는 고민들, 그럼에도 지속되는 도전들이 감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싶었다”. 영화 스토리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터넷은 제작 과정에서도 큰 몫을 했다. 각 종목 무술의 달인들을 찾아내고 만나게 된 것도, 촬영에 적합한 장소를 둘러보는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한 무술 영화에 돈을 대겠다고 나서는 물주를 충무로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후배들이 모아준 3천5백만원으로 촬영에 착수할 수 있었지만, 설원의 결투를 찍으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각본과 캐스팅 등의 준비 작업은 한달 반, 촬영은 단 2주만에 끝냈다. 2003년 3월의 일이었다.

<거칠마루>의 한장면

잠깐이면 된다며 친분이 있는 충무로 스탭들을 끌어들이고 디지털 카메라 세 대로 촬영은 어찌어찌 마쳤지만, 마무리를 해서 관객과 만나는 ‘더 큰’ 난제가 버티고 있었다. 함께 각본을 쓴 아내 변원미 작가(<서프라이즈> <중독>)의 수입에서 비용을 충당해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는 2년이 더 걸렸다. 작품의 독특한 소재와 에너지에 반한 영화사 스폰지에서 마케팅과 배급을 맡아 주기로 하면서, 올 초 하이라이트 대결신과 김C가 등장하는 프롤로그와 나레이션을 새로 작업할 수 있었다. “이전 버전에서는 모든 인물들을 비슷한 비중으로 두루뭉실하게 소개했지만, 재촬영을 하면서 주인공 장태식의 비중을 늘렸다. 대련자가 택견 도장을 관리하는 그의 처지를 비웃자 ‘나 사실 도장 애들 봉고차 모는 일을 좋아한다’는 대사를 추가한 것이 그 예다. 무술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현실에서의 애환 같은 것을 부각하고 싶어서였다”. 7천만원으로 거칠게 완성했던 <거칠마루>는 1억3천만원의 순제작비를 더 보태 다른 ‘때깔’을 띠게 되었고, 오는 8월말 극장 개봉 계획도 잡았다.

무술에 문외한이었고, 액션 연출에 특별한 야심이 없었던 김진성 감독에게 <거칠마루>는 ‘무술을 배우고 무술인을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관객에게도 이 영화가 비슷한 체험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처음부터 ‘복수’가 없고 피가 많지 않은 무술 영화를 하고 싶었다. 따스한 무술이라고 할까. 이 영화에서 무술이라는 건 껍데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거칠마루>를 기획하던 와중인 2002년 로맨틱코미디 <서프라이즈>로 충무로에서 연출 데뷔를 하기도 했던 그는 ‘체증’처럼 남았던 전작에 대한 아쉬움을, 가난하지만 치열했던 이번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한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디지털 영화가 관객과 조우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힌 것은 중요한 성과. “디지털 장편 영화하면, 작위적인 작가주의나 엄숙주의 이런 게 먼저 떠오르지만, 나는 대중적으로 쉽고 재미난 영화를 하고 싶었다. 디지털을 택한 데는 분명 그런 이유도 있었다”. 디지털이기 때문에 가까스로 ‘시작’될 수 있었던 <거칠마루>는 다른 소재와 다른 화법, 그리고 다른 열기로 디지털 독립 장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사진 소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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