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라방드> Saraband
2005-05-03
글 : 박은영

잉마르 베리만/ 스웨덴/ 2003년/ 107분

잉마르 베리만의 1973년작 <결혼에 관한 몇가지 장면>의 후일담. 요한과 마리안은 한때 행복한 부부였다. 요한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면서 결혼은 파탄에 이르고, 십여년 뒤 재회했을 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재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마리안이 사진 속의 추억을 더듬다가 요한을 찾아나서는 것에서부터 <사라방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늙고 약해진 요한을 바라보며, 마리안은 원망도 미움도 녹아내리는 걸 느낀다. 요한이 화면에서 사라진 사이, 마리안은 정면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읊조린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아요."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마리안은 요한을 보살피느라 한동안 그 곁을 지키고, 그러면서 요한의 말썽 많은 가정사에 개입하게 된다. 요한은 아들 헨릭과 사이가 나쁘고, 헨릭은 자기 딸 카렌에게 집착한다. 마리안은 헨릭의 아내 안나의 죽음으로 이들 가족 관계가 더욱 깊은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명의 인물, 10개의 장으로 이뤄진 <사라방드>는 베리만의 표현대로 "4명의 솔로이스트와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다. 네 명의 등장인물들은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서정적인 영상 속에서 복잡미묘한 관계의 실체와 감정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아버지들은 베리만의 여느 영화에서처럼 자식들과 반목하고 불화한다. 이들은 아내와 연인과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지만, 홀로 남은 새벽이면 엄습하는 슬픔과 고독 앞에 아이처럼 무너지고 마는 가련한 남자들이다. 아비와 아들의 대립, 인간 본원의 고독, 삶과 죽음의 테마가 노대가의 깊은 눈과 여문 손끝을 통해, 담담하고 서글프고 우아하게 펼쳐진다. 올해 여든 여섯살인 베리만은 <사라방드>를 “마지막 영화”로 기획하면서 최신 기술이랄 수 있는 HD를 특별히 끌어안았다.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야속해 할 수 없을 만큼 처연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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