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터뷰] <이노센스>의 뤼실 하지할릴러비치 감독
2005-05-04
글 : 박은영
“아이들의 감성으로 소통하는 게 좋다”

“츠카모토 신야 영화 봤어요? 기괴하다구요? 그렇겠죠. 그래야 그의 영화니까.” 인디비젼 상영작 <이노센스>를 들고 프랑스에서 날아온 뤼실 하지할릴러비치가 오랜 비행과 시차로 인한 피로를 잊으려 커피를 들이키면서 제일 먼저 건넨 말이었다. 공식 일정 막간에 상영작을 챙겨볼 욕심을 비치며, 좋은 한국영화를 추천해달라고도 했다.

뤼실 하지할릴러비치는 1990년대 후반 중단편 작업을 시작했고, 동지이자 연인인 가스파르 노에(<돌이킬 수 없는>)의 98년작 <아이 스탠드 얼론>의 편집과 제작을 맡기도 했다. <이노센스>는 뤼실 하지할릴러비치의 장편 데뷔작. <이노센스>에서 그는 외부와 단절된 채 숲 속에서 살고 있는 소녀들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성장’은 그가 즐겨 다루는 테마. 동화 <빨간 모자>의 상징을 끌어온 중편 <미미: 장 피에르의 입>은 고모네 얹혀 사는 소녀의 심리적 억압을 그렸고, 차기작 역시 병원에 간 소년의 공포스런 체험을 담게 될 거라고 전한다. 뤼실 할릴러비치는 2년의 고투 끝에 다국적으로 제작된 <이노센스>의 사례를 들며, 프랑스의 영화 투자 제작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노센스>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
-원래 밝고 활기찬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친구의 권유로 프랑크 베트킨의 소설을 접하고 강하게 이끌렸다. 숲 속에 고립돼 사는 소녀들의 이야기인데, 왜 거기 모였고 어디로 가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영화로 옮기는 과정엔 내 해석이 가미됐다. 두가지 상반된 분위기를 강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지상 천국 같은 그 곳에서 많은 걸 누리지만, 한편으로 고통받고 답답해 한다. 나는 그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다룬 영화치고 어둡고 우울하고 억압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 내가 힘든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성장해야 한다,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지 않나. 어른들은 같은 과정을 겪었으면서도, 애들의 마음을 피상적으로 해석할 뿐이다. 화려한 리본을 맨 아이들은 춤추고 뛰어노는 경쾌한 모습으로 비치지만, 성장하는 그들의 내면엔 두려움이 자란다.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들은 관에 실려 나타났다가, 발레 공연을 마치면 떠나간다.
-원작에는 아이들이 상자에 실려 온다고 돼 있는데, 그걸 관이라고 해석했다. 이전의 삶은 아이들에겐 죽음과도 같고, 관을 열고 나오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 발레 공연은 학예회와도 같다. 무대 위에 선 아이들에게 관객은 실체로서의 부모가 아니라 추상적인 어른들이다. 그들 앞에 선다는 것은 일종의 통과 의례다.

어둡고 눅눅한 화면, 으릉대는 음향이 특징적이다.
-터널 속이나 겨울의 앙상한 밤 풍경을 묘사할 때 말고는 빛도 색도 강하게 쓴 편이다. 음향은 '미래의 나'에 대해 고민하고 초경 무렵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반영한다. 그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의 소리를, 아이들이 듣는 것이다.

가스파르 노에에게 헌정하는 영화라고 알고 있다. 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내게 영화를 만들라고 많은 격려를 해 준 사람이다. <이노센스>에서 특별히 도움을 받은 부분은 없다. 그의 작품은 카타르시스를 주고, 내 작품은 인간의 내면 세계, 기다림의 코드가 있기 때문에, 색깔과 지향점이 다르다. 다만 그의 작품 세계가 메아리처럼 내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됐을 수는 있겠다.

소녀들의 성장에 특별하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린애들은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감수성으로, 혹은 오감을 동원해서 상상하거나 이해하곤 한다. 아이들의 그런 시선과 감성으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는 게 좋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다.
-지금 시나리오 집필 중인데, <이노센스>보다 판타지의 느낌이 강하다. 14살 소년이 병원에서 겪는 일을 그리는데, 공포의 느낌이 강해질 거다. 제작비를 구하면 내년 여름께 크랭크인하고 싶지만,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진 소동성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