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로스트 인 트랜스레이션(Lost In Translation)이다.” 검게 염색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눈썹에 피어싱을 한 이 총각은 전주가 낯설고 신기해서 재미있단다. 자신의 유일한 영화 출연작인 <내 마음의 구멍>으로 전주를 방문한 비욘 알무로쓰는 스웨덴 북부의 작은 도시 키루나 출신. “여행하는데 진력이 나 있다”는 루카스 무디손 감독을 대신해서 보도듣도 못한 장소로 날아온 19살의 모험가다.
<쇼 미 러브>와 <천상의 릴리아>같은 영화로 주목받은 루카스 무디손 감독의 신작 <내 마음의 구멍>은 ‘무서운’ 영화다. 아마추어 포르노를 제작하는 아버지와 친구와 여배우, 방안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들의 하루를 그리는 이 작품은, 넋이 나갈정도로 정신없는 편집에 극단적인 이미지들(마약흡입, 성기노출, 배뇨, 구토 장면)이 관객의 망막을 할퀸다. 놀랍게도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비욘 알무로쓰는 이 작품의 각본이 “매우 시적이고, 독창적이며, 정말로 쿨하다”고 여겨서 출연을 결심했다. 이미지가 너무 세서 감독의 메시지를 알아채기가 쉽지않다는 질문에 그는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것은 세상의 타락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세계화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파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조근조근 설명한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내 마음의 구멍>은 정식으로 극장개봉을 거쳤고 DVD로도 출시되어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꽤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이는 루카스 무디손이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존중받는 젊은 거장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내 마음의 구멍>을 찍은 뒤 “별로 시덥지 않아서” 고등학교를 중퇴해버렸고, 지금은 아트스쿨에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은 홍콩과 한국 액션영화들. <무사>와 <무간도>를 열렬히 칭송하는 그에게 <달콤한 인생>의 상영관과 영어제목을 적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러니 <달콤한 인생>을 보던 관객들은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 옆자리에 앉아있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