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섯 개의 장애물> The Five Obstructions
2005-05-05
글 : 박은영

감독 요르겐 레스, 라스 폰 트리에/ 덴마크/ 2003년/ 90분

라스 폰 트리에는 게임을 하듯 영화를 만든다. 도그마선언을 통해 주류 영화계에 맞서는 대안적인 영화 만들기를 주창했던 폰 트리에는 자신이 세운 규칙에 얽매이거나 넘어섬으로써, 파격적인 영상 실험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엔 자신의 스승이자 선배인 덴마크의 노장 요르겐 레스를 끌어들였다. 라스 폰 트리에는 레스에게 그의 1968년작 단편 <완전한 인간>을 다섯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달라고 제안하면서, 매번 기상천외한 제약 조건을 내건다.

첫 번째는 쿠바에 가서 셋트없이 찍되 12프레임을 넘어선 안된다. 두 번째는 어떤 비참한 곳을 배경으로 하되 그 사람들을 화면에 담아서는 안된다. (레스는 인도의 빈민가를 택했고, 그들을 배경에 두는 실수를 범했다) 규칙 위반으로 내린 벌, 그러니까 새로운 규칙이 세 번째 영화에 적용된다. 그건 아무 규칙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라는 것. 이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네 번째는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만들 것, 다섯 번째는 폰 트리에가 쓴 내레이션을 레스는 그냥 읽기만 할 것.

<다섯 개의 장애물>은 라스 폰 트리에가 요르겐 레스에게 <완벽한 인간>을 현대판으로 다시 만들어달라고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 매번 다른 제약 조건을 내건 뒤, 완성된 작품을 함께 보고 토론하는 과정을 따라잡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여섯 편의 단편 극영화(오리지널 포함)와 각 작품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아우르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가장 ‘완벽한 감독’을 궁지에 몰아 넣고, 그가 어떻게 고통을 받고 또 위기를 돌파하는지를 지켜보는 라스 폰 트리에는 일면 비겁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제는 (제약에 대한) 질문으로 그칠 게 아니라 대답을 해야 한다”는 그의 취지는 기대치 않았던 다양한 성과로 이어진다. 기세등등하던 라스 폰 트리에가 ‘내가 졌소!’라고 승복하기까지, 노련한 선배와 영악한 후배가 밀고당기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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