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치>는 지난 1997년 감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제1회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에 선정됐지만, 2004년이 돼서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아 완성된 독립영화다. 3천만원을 받아 15일 만에 디지털로 촬영을 마쳤다. 7년 만에,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만든 영화 <프락치>를 20일 개봉하게 된 황철민(45) 감독은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듯했다.
<프락치>는 정체가 드러나 은신중인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이 한 여관방에 머물며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다. 여관방은 프락치의 인권을 억압하는 감옥을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둘은 방안에 있던 유일한 책인 『죄와 벌』을, 자신들이 연기하면서 비디오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 그 책이 『죄와 벌』이라는 사실은 “프락치도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락치 활동의 죄는 남고 벌도 받아야 한다”는 감독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하다. 실제로 프락치는 죽임을 당하고, 그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을 것이다.
황 감독은 <프락치>를 “프락치의 인권에 관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등으로 프락치나 의문사 같은 소재의 신선함이 줄어들었다. 감독도 그 점을 아쉬워했다. “7년 전에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필름 영화로 만들려다가 제작기간이 길어졌는데 어차피 디지털로 만들게 될 거, 진작 만들 걸 그랬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된 문제들이 아니니, 한국 근대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보편화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황 감독은 “그런 의미 때문에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같다”고 덧붙였다.
황 감독은 또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이자 영화과 조교수까지 지냈던 감독이 만든 영화치고 지나치게 아마추어리즘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일단, 3천만원 짜리 독립영화의 완성도를 30억 들인 상업영화의 눈높이에서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어차피 완성도를 높여 관객들을 만족시킬 여건이 안 된다면, 아예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실망시키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재미를 준 뒤 관객들을 이 영화의 주제의식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황 감독은 구체적으로, 풍부한 색감을 살릴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색 보정 단계에서 아예 색을 더 빼는 방식으로 거친 느낌을 살렸다. 또 영화초반, 몸매가 미끈하지도 않은 데다가 털마저 덥수룩한 프락치와 기관원의 맨살에 카메라를 밀착해 들이대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구 뒤섞인 듯’ 영화 속에 멜로, 심리스릴러 등 온갖 장르를 끌어들인 것도 같은 이유다.
황 감독은 끝으로 “소수의 영화전문가들만 환호하는 독립영화, 실험을 위한 실험에 몰두하는 독립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며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한국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황 감독은 당분간 기러기 아빠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제작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