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대로>는 한 남자가 풀장에 떠 있는 그 유명한 장면으로 시작해 무시무시한 얼굴의 늙은 여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끝난다. 죽은 남자는 삼류작가인 조(윌리엄 홀덴)이고, 늙은 여배우는 과거의 빅스타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다. 그런데 다시 본 <선셋대로>에서 주인공 노마만큼 눈에 띄는 사람은 조가 아닌 집사 역을 맡은 맥스(에리히 폰 스트로하임)다.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한 생각도 극중 <여왕 켈리>(1929)가 화면을 채우던 부분으로 바뀌었다. 짜임새 없는 영화를 만들고 가짜 귀족 행세나 하는 허풍선이로 취급받던 스트로하임은 당시 B급영화 등에 배우로 얼굴을 내밀 때였다. <여왕 켈리>는 <탐욕>(1924)에서 이미 예견된 스트로하임의 몰락을 정점으로 이끈 작품이며, 그 영화에서 켈리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젊은 글로리아 스완슨이다. 스트로하임이 <여왕 켈리>의 필름이 담긴 영사기를 자기 손으로 돌리는 순간, 글로리아 스완슨이 벌떡 일어나 말한다. “다들 스타의 모습이 어떤 건지 잊은 거야? 내가 다시 보여주겠어!” 노마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미친 여자임이 분명하지만, 그녀가 뿜어내는 거대한 힘과 과장된 연기는 실제 작아진 건 영화 자체이지 스타의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오랜 동료들이 스타의 쇠락을 목격한다. 전남편이자 집사로 출연한 스트로하임 외에 실명으로 출연한 세밀 B. 드밀, 버스터 키튼, H. B. 워너 등이다. 그렇게 해서 <선셋대로>는 눈을 돌리고 싶은 끔찍한 현실과 벗어날 수 없는 음울한 판타지가 결합된 한편의 고딕소설로 완성됐다. 혹시 풀장의 죽은 남자는 맥거핀이었고, 조의 존재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진정 화려한 스타와 스튜디오의 영광이 다할 즈음에 등장한 새로운 배우들- 그들에게 남겨진 건 자신의 시체였으며, 그들은 조가 그랬던 것처럼 그 몸을 부여안고 살아야 했다. ‘선셋대로’는 서쪽 샌타모니카 해변으로 연결되는 LA의 길 이름이다. <편협>(1916)의 거대한 세트가 세워졌던 그 거리는 이후 저무는 해를 보게 될 할리우드에 더없이 어울리는 영화 제목이었다.
DVD는 클래식의 격에 어울린다. 빌리 와일더의 전기를 쓴 에드 사이코프의 음성해설은 고증에 충실하며, 메이킹 필름, 오리지널 오프닝, 음악가 프란츠 왁스먼 특집 등 버릴 부록이 없다. 그중 흥미로운 건 전설적인 의상디자이너 이디스 헤드 특집이다. 얼마 전 <인크레더블>에서 코믹한 캐릭터로 묘사됐던 그녀가 생각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