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계의 소문난 쌍둥이 감독 김곡김선의 영화는 어렵다. 니체와 메를로퐁티와 후설과 네그리와 마르크스의 사상을 영상으로 옮겼던 김곡김선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떠오른 단상은 이랬다. 차라리 그냥 2차 서적을 새로 쓰는 게 어때? 아직 학생이었을 때 영화제에서 접한 김곡김선의 <시간의식>과 <반변증법>은 어려운 데다가 지겹기까지 했다. 이론서적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듯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비유가 난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과의 대화에 나선 김곡김선은, 관객이야 머리가 깨질 것 같건 말건 그저 즐거워 보였다.
그로부터 몇년 뒤. 일본 시부야에서 김선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선 한국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김선은 상영작 <자본당 선언>의 감독으로 초청됐다. 나는 관객이 아닌 기자로 김선을 인터뷰했다. 변한 것은 나의 위치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김곡김선의 영화 역시 달라져 있었다. <공산당 선언>을 영화로 옮기겠다는 무모함은 여전했다. 자본의 순환과 모순의 심화를 무려 2시간의 러닝타임에 걸쳐 표현한 영화는 당연히 지루했다. 그런데 재밌었다. 줄기차게 암호 같은 영화를 만들면서 나름의 해독법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김곡김선의 영화는 더이상 유명한 이론가들의 해설 혹은 주석이 아니었다. 가끔씩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 나는,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김선에게 말을 놓자고 제안했다. 재밌어진 김곡김선의 영화가 반가웠기 때문인지, 김곡김선이 나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에 흥분한 때문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세계 최강급의 친화력을 지닌 산만한 김선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이름을 불렀다. 서울에 돌아와서 한동안, 끔찍하게 지루한 영화를 만들었던 김곡김선의 그와 같은 성장을 기특하다고 여겼다.
지난 일요일 저녁. 김곡김선의 새 영화 <뇌절개술>을 월드프리미어로 봤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탭이며 배우들이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한 모니터링 상영회였지만. 그런 자리는 아무래도 뻘쭘하다. 영화를 보면 제작진이 몇달 동안 한겨울 태백의 탄광촌에서 겪었던 말 못할 고생이 눈에 보이건만 그들은 내내 유쾌해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최면 혹은 자아도취가 아니었다. 한때 영화를 만들었던 나는, 때때로 끔찍해지는 영화 만들기를 피해 기자가 됐다. 그런데 뭐라고 말만 하면 “싫어, 싫어∼”라며 귀여운 척을 해대는 (처음엔 그것이 김선의 버릇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만난 김곡도 다르지 않았다) 김곡김선은 지옥 같은 감독노릇을 줄기차게 즐기고 있었다. 영화는 재밌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김곡김선이 부러워 쓸쓸해질 지경이었다.
이미 다섯편을 훌쩍 넘도록 영화를 만든 김곡김선의 <뇌절개술>은 대부분 아마추어스러우며, 여전히 노골적이다. 나는 그 용기가 기특하고 또 부럽지만, 조심스런 바람이 생겼다. 어른스런 김곡김선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것. 당장 충무로 제작자에게 시나리오를 보이라거나, 참하고 프로페셔널한 영화를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유희를 뛰어넘는 책임감, 프로파간다를 능가하는 내면의 울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화 만들기가 끔찍해 기자가 된 주제에, 너무 심한 요구라고? 포도를 먹지 못하게 된 여우가, 옆에 있는 키크고 능력있는 다른 여우를 부추기는 꼴이다. 어쨌든, 포도가 시다고 욕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