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밤거리를 하염없이 뛰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길에 다다랐을 때 걸음을 멈췄다. 힘이 들었는지 거친 숨을 내쉰다. 무엇보다 소년은 배가 고팠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것뿐이랴. 자기와 동생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생각나서, 힘없이 쓰러져 있는 동생들이 가여워서, 또래처럼 학교에 가고 싶어서, 유일한 친구가 원조교제를 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서, 아무도 그들을 모른다는 게 너무나 억울해서.
<아무도 모른다>는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악당영화다. 처음엔 귀여운 아이들이 마주한 끔찍한 시간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다. 영화의 모퉁이 어딘가에 숨어있던 나의 모습이 자꾸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살면서 받은 만큼 타인에게 되돌려줬던 상처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소비한 시간과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던 기회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악당영화는 참 이상하다. 엉엉 울어도 모자랄 꼬마들이 눈물 한 방울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데, 숨어있던 악당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등장하니 말이다.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볼수록 멈추지 않는 눈물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해 기어이 속죄를 해야 했던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우리는 횡단보도에 나란히 서있는 네 아이를 보게 된다. 그 중 세 아이의 키는 언제부터 꼭 같아진 것일까? 이제 막내가 된 꼬마는 세상을 알게 된 후 훌쩍 커 보이는 누나 둘과 형을 올려다본다. 아직도 장난꾸러기인 꼬마와 조용히 서 있는 세 아이. 누나와 형이 뒤돌아보지 않고 길을 걸어갈 때, 우리를 향해 마지막 웃음을 보여준 사람은 유일하게 자라지 않은 그 개구쟁이 꼬마였다. 그게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꼬마가 언제까지나 자라지 않길 바랄 순 없다. 그러니 혹시 길을 가다 분홍색 트렁크를 본다면, 그 속에 잃어버린 당신의 마음이 있을까, 다시 한번 더 살필 일이다.
<아무도 모른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을 많이 알린 덕인지, 같은 날 그의 전작들인 <환상의 빛>과 <원더풀 라이프>의 DVD가 한꺼번에 출시된다. <디스턴스>를 제외한 그의 장편을 다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디지털과 필름이 같이 사용된 <아무도 모른다>의 화질이 그렇게 좋진 않으나, 극장에서 감상했던 것과 큰 차이는 없다. 화려한 사양으로 출시된 일본판과 달리, 몇몇 사정으로 인해 국내판엔 다양한 부록이 담기진 못했다. 미니 메이킹 필름과 주인공 소년으로 열연한 야기라 유야의 방한기록, 뮤직 비디오, 예고편 모음 등은 소박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