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면의 비밀]
<크로우> 브랜든 리의 부활
2005-05-10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영화 <크로우>는 배우 브랜든 리가 촬영 도중 사망함으로써 현실이 죽음과 그 부활을 다룬 작품의 주제와 미묘하게 맞물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브랜든 리의 유작이 된 <크로우>는 그의 사망 당시 주요 촬영이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작진은 시각효과의 힘을 빌려 작품을 마무리 짓기에 이른다. 브랜든의 사후 1년 뒤인 1994년 봄에 개봉된 <크로우>는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그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대역을 활용한 장면들이 비교적 흠 없이 연결되어 있어 한 번의 감상으로는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 영화의 주요 트릭은 대역 배우의 얼굴 부분에 브랜든의 얼굴을 합성시키는 것이 많았다. 극중 브랜든이 연기한 에릭 드레이븐이 부활한 후 자신이 살던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드레이븐은 원래 비가 쏟아지는 골목길을 걷는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떨어지는 빗방울을 일일이 CG로 지운 뒤, 문 뒤편에 새어 들어온 빗방울을 몇 개 떨어지도록 합성하여 온 몸이 젖은 드레이븐과의 위화감을 최소화했다.

두 번째는 드레이븐의 회상 장면에서, 악당들에 의해 창문 밖으로 내던져진 그의 모습. 여기서는 대역이 연기했으며, 얼굴만 브랜든의 것이다. 얼굴에 묻은 피 등의 처리는 CG로 이루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뇌우가 쏟아지던 밤, 마침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복수의 사자로 거듭난 드레이븐이 창가에 서는 장면 역시 모두 대역이 연기했다. 깨진 거울에 비친 브랜든의 얼굴과 번개가 칠 때 순간적으로 보이는 브랜든의 얼굴 모두 합성된 것이다. 모두 어둠 속에서 잠깐씩만 보이는 것들이므로 합성의 위화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후반부, 친구 사라가 드레이븐의 방에 찾아와 그에 대한 그리움을 독백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나타난 드레이븐의 실루엣 역시 대역. 역광 처리로 얼굴이 아예 보이지 않아 대역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비주얼 자체를 장면의 분위기에 맞춤으로써 관객을 거슬리게 하지 않은 영리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당시, 돈벌이를 위해 사자의 이름을 팔아서 싫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브랜든 리의 죽음과 같은 사건은 영화 현장에서 절대로 일어나선 안될 일이지만, 당시 한창 발전하고 있었던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생사를 초월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티가 난다면 모를까,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마무리를 했다면 저 세상의 브랜든 역시 조금은 안도하지 않았을까. 비록 그는 갔지만, <크로우>에서 ‘부활한’ 브랜든의 모습은 영화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팬들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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