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댄서의 순정> 채린과 영세
2005-05-13
글 : 정이현 (소설가)
옥탑방 문을 열어 사랑을 선택한 채린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영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문근영과 박건형은 빛났지만 배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나의 몫이 아니다. 이것은 ‘해석남녀’라는 칼럼이며, 나에게는 다만 영화 속 인물들의 성격과 욕망, 희망과 좌절, 혹은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주어졌을 뿐이다.

열아홉 살의 연변 소녀 채린은, 댄스트레이너 영세를 ‘아즈바이’라고 부른다. 아즈바이. 정겹고 순박한 발음이다. 위장결혼까지 해가며 이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3개월 남은 경연대회의 준비 때문이다. 기본스텝도 밟을 줄 모르던 채린은 영세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 진정한 댄서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들은 점점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간다. 누구나 짐작 가능한 수순이다. 이들의 사랑 앞에 위기가 놓여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결국 극복되리라는 것도, 누구나 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채린은 영세의 옥탑방을 찾아간다. 옥탑방 문 앞에서 채린의 손은 차마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못하고 허공에서 주춤댄다. 문을 열거나, 열지 않거나! 소녀에게는 아직 선택의 기회가 남아있다. 문을 연다면, 소녀는 그리워하던 남자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사랑을 확인할 것이다. 초록 반딧불처럼 그들은 날개 없이도 하늘을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녀는 구질구질하고 지난한 현실 속에 몸을 담그게 된다. 과자만 먹고 살 수는 없을 테니, 생활을 위해 두 남녀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다리가 불편한 퇴물 스포츠댄서와, 언니 행세를 하며 살고 있는 연변처자가 이곳에서 무슨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더 험한 일이 이들 앞에 가로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소녀는, 문을 연다.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껴안는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천천히 깨닫는다. 어떤 영화가, 해피엔드로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바로 그 시간부터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이 우르르 몰려나간 뒤에도, 부대끼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울고 웃으면서 그들은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선택한 채린과 영세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영화 <노트북>의 노아와 앨리처럼 그들도 노후까지 애틋하게 사랑하며 함께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몇 해 뒤 채린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네오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옥탑방을 떠날 지도 모른다. “내가 도망친 거다”라고 중얼거릴 때 소녀는 조금 자라있을까? 무엇을 선택하든, 그들도 우리처럼, 자기 길을 간다.

영화 안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훔쳐보는 동안 일년여 가 흘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글을 쓰는 작업은 버겁고도 행복했다. ‘못 만든 영화’는 있어도 ‘못생긴’ 캐릭터는 없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정이현의 해석남녀는 이번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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